지구(地球)
- 박용하
달 호텔에서 지구를 보면 우편엽서 한 장 같다. 나뭇잎 한 장 같다. 훅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저 별이 아직은 은하계*의 오아시스*인 모양이다. 우주의 샘물인 모양이다. 지구 여관에 깃들어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만원이다. 방이 없어 떠나는 새 · 나무 · 파도 · 두꺼비 · 호랑이 · 표범 · 돌고래 · 청개구리 · 콩새 · 사탕단풍나무 · 바람꽃 · 무지개 · 우렁이 · 가재 · 반딧불이…… 많기도 하다. 달 호텔 테라스에서 턱을 괴고 쳐다본 지구는 쓸 수 있는 말만 적을 수 있는 엽서 한 잎 같다.
- 시집 《영혼의 북쪽》(1999) 수록
◎시어 풀이
*은하계(銀河系) : 은하를 이루고 있는 항성을 비롯한 수많은 천체의 집단. 항성 · 성단(星團) · 가스상 성운 · 성간진 · 성간 가스 따위로 이루어져 있음. 태양계는 은하계의 한 부분임
*오아시스(oasis) : ① 사막 가운데에 샘이 솟고 풀과 나무가 자라는 곳. ② 위안이 되는 사물이나 장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테라스(terrace) : 실내에서 직접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방의 앞면으로 가로나 정원에 뻗쳐 나온 곳.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시적 화자가 달 호텔에서 묵으며 지구를 바라본다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우리가 사는 현재의 지구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를 통해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를 비판하며 인간과 모든 생명체의 공생(共生)을 추구하고 있다.
이 시를 처음 볼 때 눈에 띄는 것은 직사각형 모양의 의도적인 시행 배열이다. 그러나 그 의아함은 시의 첫 부분을 읽는 순간 해결된다. 시인이 지구를 한 장의 우편엽서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시적 화자가 ‘달’이라는 공간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는 독특한 발상을 기반으로 하여, 지구를 '우편엽서'에 비유하고 있다. 이것은 우편엽서가 누구에겐가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보내는 매체라는 점에서 지구에 사는 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그렇다면 그 메시지의 내용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이러한 궁금증은 바로 그다음 묘사에서 풀리게 된다. 즉 달에서 본 지구의 모습이 곧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나뭇잎’이거나,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아직은 은하계의 오아시스’이거나, 만원인 ‘여관’으로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만원인 ‘여관’에는 인간이 모든 땅을 독차지하고 인간을 제외한 수많은 동식물이 깃들일 땅을 빼앗기고 떠나는 모습을 통해 인간 문명에 의한 생태계 파괴라는 우려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비록 생명체는 아니지만, 무한한 생동감의 이미지인 ‘파도’와 희망의 이미지인 ‘무지개’마저 떠나는 현실은 문명 발달에 따른 환경오염, 대기오염 등으로 지구 환경의 파괴하고 있는 현실을 암시하는 것으로서 화자는 이와 같은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주목할 것은 지구에 대한 화자의 관점이다. 그것은 '달 호텔' 과 '지구 여관'이라는 말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인류가 문명을 개발하지 않은 달은 ‘호텔’이고, 인류가 다른 생명체들의 보금자리를 빼앗고 있는 지구는 ‘여관’이라는 대조적 표현에서 인류 문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비유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다른 생물들은 살 수 없게 된 현실에 대한 화자 비판의식의 반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화자는 ‘달 호텔 테라스에서 턱을 괴고 쳐다본 지구는 쓸 수 있는 말만 적을 수 있는 엽서 한 잎 같다.’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쓸 수 있는 말만 적을 수 있는 엽서’는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언어, 즉 인류의 문명이 지구를 지배하고 독점하는 현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에 대한 화자의 비판적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궁극적으로 지구는 은하계의 오아시스이고, 우주의 샘물이므로, 인간이 독차지해서는 안 되며, 수많은 동식물이 함께 살아가는 생명 공동체의 공간이 되어, 지구에서 인간과 모든 생명체가 공생을 추구해야 함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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