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나물
- 박성우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고사리와 취나물을 잔뜩 뜯어 오셨어요
머리엔 솔잎이 머리핀처럼 꽂혀 따라와
마루에서야 뽑아졌구요 어머니는
두릅이 죄다 쇠서* 아깝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무심히 떠난 아버지를 중얼거렸는지 몰라요
가족사진에 한참이나 감전되어 있던 어머니가
취나물을 다듬기 시작했어요
어머니는 웬일인지 연속극을 보지 않으셨어요
왜 그랬을까요 어머니는
아버지 냄새에 취해 있었던 건 아닌지
느그*아부지는……느그 아부지는……
취나물은 다른 때보다 아주 천천히 다듬어졌어요
느그 아부지는 취나물을 별시랍게도* 좋아혔는디,
어머니가 갑자기 훌쩍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러게 취나물은 뭣 하러 뜯어와서 그려요,
그런 어머니가 미워서 나는 방을 나왔어요
사실은 나도 울 뻔했으니까요 그리고 다짐했어요
내일 아침상에 올라올 취나물은 쳐다도 안 볼 거라고,
별들도 이 악물고 견디고 있었어요
- 시집 《거미》(2002) 수록
◎시어 풀이
*취나물 : 어린 참취 또는 그 잎을 삶아 양념을 쳐서 볶은 나물.
*쇠다 : 채소 따위가 너무 자라 연하지 않고 억세어지다.
*느그 : ‘너희’의 방언(경남, 전라)
*별시랍다 : ‘별스럽다’의 사투리, 보기에 보통과는 다른 데가 있다.
▲이해와 감상
박승우의 <취나물>은 2002년 간행한 그의 첫 시집 《거미》에 수록된 작품으로, 이 시집에는 가족, 특히 어머니에 대한 시들이 여럿 있는데, <취나물>은 그중의 하나이다. 이 시는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면서 어머니가 뜯어 오신 취나물을 통해 아버지를 잃은 가족들의 슬픔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인 ‘나’는 취나물을 뜯어와 다듬으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취나물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를 참고 슬픔을 견뎌내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취나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가족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이 시는 어머니와 화자(자식) 간의 대화체를 활용하여 가족들의 정서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방언을 사용하여 향토색을 부여하고, 시구의 반복과 생략의 문장부호를 사용하여 여운을 느끼게 하는 한편 ‘ ~ 어요’라는 종결어미의 반복을 통해 운율을 형성하면서 공손한 느낌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의 구성을 보면 1~6행까지는 아버지 산소에서 고사리와 취나물을 잔뜩 뜯어 오신 어머니의 모습을, 7~15행에서는 취나물을 다듬으며 아버지를 떠올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16~20행에서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견디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고사리와 취나물을 잔뜩 뜯어 오셨다. 그런 어머니는 머리에 솔잎이 꽂혀 있는 것도 모른 채 집에 돌아와 뽑아낸다. 그리고 어머니는 무심히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며 ‘두릅이 죄다 쇠서 아깝다’는 말씀만 몇 번이나 되풀이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에는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그리움이 배어 있다. 이어 어머니는 ‘가족사진’을 보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상기하면서 취나물만 다듬으시다가 “느그 아부지는 취나물을 별시랍게도 좋아혔는디”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훌쩍거리며 운다.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신 후 내내 아버지 생각을 하셨을 어머니의 모습을 화자는 이렇게 관찰하면서 어머니의 가슴 속 깊이 간직된 그리움과 슬픔을 조용하게 그려낸다. 그립고 안타까운 심정을 그저 ‘느그 아부지는 취나물을 별시랍게도 좋아혔는디’라고 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어머니이기에 더욱 미더운 사랑이 느껴진다. 화자인 ‘나’는 그런 어머니를 원망하지만, 그 원망 속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이를 악무는 고통 속에서 그리움을 참아 내겠다고 다짐하는 화자의 안타까운 마음이 드러나 있다. 해설 참조>
▲작자 박성우(朴城佑, 1971 ~ )
시인. 전라북도 정읍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거미>로 당선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로 성장기 청소년의 마음을 독특한 언어로 표현한 시를 많이 썼다. 시집으로 《거미》, 《가뜬한 잠》, 《난 빨강》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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