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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아직은 연두 / 박성우

by 혜강(惠江) 2020. 5. 28.

 

 

아직은 연두
- 박성우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우물물에 설렁설렁 씻어 아삭 씹는
풋풋한 오이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옷깃에 쓱쓱 닦아 아사삭 깨물어 먹는
시큼한 풋사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연두
풋자두와 풋살구의 시큼시큼 풋풋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풋내가 나는 연두
연초록 그늘을 쫙쫙 펴는 버드나무의 연두
기지개를 쭉쭉 켜는 느티나무의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누가 뭐래도 푸릇푸릇 초록으로 가는 연두
빈집 감나무의 떫은 연두
강변 미루나무의 시시껄렁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늘 내 곁에 두고 싶은 연두,
연두색 형광펜 연두색 가방 연두색 팬티
연두색 티셔츠 연두색 커튼 연두색 베갯잇
난 연두가 좋아 연두색 타월로 박박 밀면
내 막막한 꿈도 연둣빛이 될 것 같은 연두
시시콜콜, 마냥 즐거워하는 철부지 같은 연두
몸 안에 날개가 들어 있다는 것도 까마득 모른 채
배춧잎을 신나게 갉아 먹는 연두 애벌레 같은, 연두
아직 많은 것이 지나간 어른이 아니어서 좋은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초록이 아닌 연두

       - 시집 《난 빨강》(2010)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감각적인 비유를 통해 연두가 상징하는 시기의 긍정적 가치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특히, 이 시는 ‘연두’라는 색깔을 통해 성장과 성숙의 과정에 있는 시기의 가치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감각적으로 주제를 드러내는 이 시는 ‘연두’와 ‘초록’의 대비를 통해 연두가 상징하는 시기가 가진 속성과 가치를 다양한 비유를 통해 나타내고, 반복과 변주를 통해 시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화자인 ‘나’는 1행에서는 연두와 초록을 대비하며 연두가 좋다고 진술하여, 연두가 상징하는 바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2~7행에서는 풋풋한 채소인 ‘오이’와 ‘풋사과, 풋자두, 풋살구’ 등 과일을 나열함으로써 연두가 가진 ‘풋풋함’이라는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8~13행에서는 ‘버드나무’와 느티나무‘의 연두를 거론하며, ‘푸릇푸릇 초록으로 가는 연두’의 성장의 과정을 긍정하며, ‘감나무의 떫은 연두’와 ‘강변 미루나무의 시시껄렁한 연두’의 아직 성숙함을 갖추지 못한 대상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표현하였다. 14~16행에서는 연두를 곁에 두고 싶다며 친근감을 표현하였고, 17~22행에서는 ‘몸 안에 날개가 들어 있다’는 진술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며, ‘애벌레’ 같은, ‘아직 많은 것이 지나간 어른이 아니어서 좋은’이라는 표현으로, 연두가 상징하는 시기가 가진 가능성을 노래하였다. 23행에서는 1행의 진술을 반복, 변주하며 수미 상관의 방식으로 시상을 마무리하여 연두가 가지는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시는 ‘연두’와 ‘초록’이라는 색채 이미지를 대비하며, 연두를 띤 다양한 시적 대상을 등장시켜 주제를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라는 시구를 반복하여, 미래에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연두’에 대한 화자의 긍정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완성되지 못한 존재이지만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고 그들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태도를 표현하고 있다.

▲작자 박성우(朴城佑, 1971 ~ )

  시인. 전라북도 정읍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거미>로 당선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주로 성장기 청소년의 마음을 독특한 언어로 표현한 시를 많이 썼다. 시집으로 《거미》, 《가뜬한 잠》, 《난 빨강》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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