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이별가 / 박목월
by 혜강(惠江)
2020. 5. 27.
이별가
- 박목월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 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1968) 수록
◎시어 풀이
*뭐락카노 : 경상도 사투리로, ‘뭐라고 하는 것이냐?’의 의미.
*동아밧줄 : 굵고 튼튼하게 꼰 줄.
*갈밭 : ‘갈대밭’의 준말. 갈대가 우거진 곳.
*옷자라기 : ‘옷자락’의 방언으로, 옷의 아래에 드리운 부분을 의미함.
▲이해와 감상
박목월의 <이별가>는 1968년에 발행한 《경상도의 가랑잎》에 수록된 작품으로, 초기의 향토 서정을 민요조에 담아 노래한 단계를 지나 현실 인식이 더욱 심화되어 소재가 생활 주변에서 역사적·사회적 현실로 확대되어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중기 이후의 작품에 속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소재로 하여 이승과 저승의 경계 기준인 ‘강’을 사이에 두고 죽음을 넘어서는 인연과 그리움, 생사를 초월한 이별의 정한(情恨)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이별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대화체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강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를 통해 이별의 애절함을 더하고 있으며, 이승과 저승의 거리감이 반복적, 점층적 표현을 통해 강조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 작품에서 삶과 죽음 사이의 간격은 강에 비유된다. 강의 저편이 저승(죽음)이라면 이쪽은 이승(삶)이다. 강 저쪽에 있는 누군가는 이쪽에 있는 화자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바람에 날려서 잘 들리지 않는다. 여기에서 그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화자와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짐작할 뿐이다.
3연에 오면, 그와 맺었던 인연인 '동아밧줄'은 '뭐락카노 뭐락카노'라고 애타게 되묻는 상황에서 ‘삭아 내린다.’ 여기서 ‘삭아내린다’는 그 동안의 인연이나 만남은 소멸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화자인 '나'는 '하직을 말자'라고 말하고 있다. 비록 이 세상에서 맺은 여러 관계는 죽음 앞에서 허무하게 썩어 내린다 해도 인연이란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5연에 와서는 ‘뭐락카노’라는 말이 세 차례 반복되지만, ‘니 옷자락만 펄럭거리고…… ’ 라는 표현으로 볼 때 저쪽에 있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은 채 흰 옷자락만 팔럭거릴 뿐이다. 그래서 화자는 6연에서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여기서 ‘오냐, 오냐, 오냐.’는 죽음에 대한 수긍과 체념이지만,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라며 다시 만나자고 한다. 이어 화자는 죽음과 삶 사이의 강은 넓고 깊은 것이지만, 우리가 맺은 인연의 바람은 그것을 뛰어넘어 끊임없이 불어 가고 불어오고 할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이로써 화자는 마지막에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라는 표현에서 ’바람‘은 앞서 장애물의 이미지로 사용되던 '바람'은 화자와 청자를 연결해 주는 역할로 변하게 되면서 운명의 순응 및 이별의 정한을 초극(超克)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 이 시의 묘미는 ’뭐락카노‘라는 경상도 방언이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축이 되어 1연, 3연, 5연에 점층적으로 반복하여 이를 통해 이승의 화자와 저승의 상대편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가 5연의 ’오나, 오냐, 오냐,’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서 이승과 저승이 단절감에서 반전하여 생사를 초월한 이별의 정한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작자 박목월(朴木月, 1916~1978)
시인. 경북 경주 출생. 본명 박영종. 1939년 《문장》에 <길처럼>, <연륜>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의 한 사람이다. 초기에는 향토적 서정을 민요 가락에 담아 담담하고 소박하게 그려냈다. 중기에는 생활 주변의 소재를 다루는 글을 썼으며, 만년에는 기독교 신앙에 깊이 침잠하는 시 세계를 보였다. 시집으로 《청록집》(3인 공저, 1946), 《산도화(山桃花》(1955), 《난·기타》(1959), 《청담(晴曇)》(1964), 《경상도의 가랑잎》(1962)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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