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 박현수
먼 길을 걸어
아이가 하나, 우리 집에 왔습니다
건네줄 게 있다는 듯
두 손을 꼭 쥐고 왔습니다
배꼽에는
우주에서 갓 떨어져 나온
탯줄*이
참외 꼭지처럼 달려 있습니다
저 먼 별보다 작은
생명이었다가
충만한 물을 건너
이제 막 뭍에 내렸습니다
하루 종일 잔다는 건
그 길이 아주
고단했다는 뜻이겠지요
인류가 지나온
그 아득한 길을 걸어
배냇저고리*를 차려입은
귀한 손님이 한 분, 우리 집에 왔습니다
- 시 전문지 《유심》 (2010) 수록
◎시어 풀이
*탯줄 : 어머니 몸속에서 아기집과 태아를 이어. 태아가 산소와 영양을 공급받는 줄
*배냇저고리 : 깃과 섶을 달지 않은, 갓난아이의 옷.
▲이해와 감상
한 생명이 태어나는 일은 힘겹고 고단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이 시에서 화자는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을 경건한 자세로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아이의 탄생을 ‘먼 길을 걸어/ 아이가 하나, 우리 집에 왔습니다.’라고 진술한다. ‘건네줄 게 있다는 듯/ 두 손을 꼭 쥐고’는 아이가 태어난 모습을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아이가 두 손을 쥐고 있는 모습이 흡사 무언가 건네줄 게 있다는 것 같다는 의미이다. 아이가 막 태어나서 두 손을 꼭 쥔 채 울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곧 이해가 된다.
그리고 화자는 아이의 경이로운 탄생을 멀고 고단한 길을 건너 우주에서 지상으로 이제 막 내려온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화자는 ‘하루 종일 잔다는 건/ 그 길이 아주 고단했다는 뜻’이라고 표현하여, 탄생의 고통, 즉 산고(産苦)를 엄마보다는 태어난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어 화자는 아이의 탄생을 인류로 확대하여, 모든 새로운 생명은 ‘그 아득한 길을 걸어’ 비로소 탄생하고 있음을 말하면서, 갓 태어난 아이를 ‘배냇저고리를 차려입은/ 귀한 손님’으로 표현하여, 고단한 과정을 거쳐 태어난 아이의 탄생을 경건한 마음으로 축하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갓 태어난 아이를 대하는 시인의 경건한 자세와 아이 탄생의 경이로움을 노래하는 것을 통해서, 생명경시(生命輕視) 풍조에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동시에 생명존중(生命尊重) 사상을 높이고자 하는 화자의 뜻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작자 박현수(1966~ )
시인. 경북 봉화 출생. 19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문단에 나왔다. 시집 :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위험한 독서》, 《겨울 강가에서 예언서를 불태우다》가 있고, 평론집 《황금책갈피》, 《전통시학의 새로운 탄생》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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