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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까치밥 / 송수권

by 혜강(惠江) 2020. 6. 18.

 

 

<출처 : 다음 블로그 '지상의 나그네'>

 

 

까치밥

 

 

- 송수권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 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 놓고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한밤중 동네 개 컹컹 짖어 그 짚신 짊어지고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

아이들아,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 주고 있지 않으냐.

 

 

◎시어 풀이

 

*까치밥 : 까치 따위 날짐승이 쪼아 먹게 따지 않고 몇 개 남겨두는 감

*말쿠지 : ‘말코지’의 방언(평안도). 물건을 걸기 위하여 벽 따위에 달아 두는 나무 갈고리.

*죽 : 옷, 그릇 따위의 열 벌을 묶어 세는 단위.

*보시(布施) : 불교 용어로, 자비심으로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을 베풂.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고향의 ‘까치밥’을 통해 인정과 배려, 공존(共存)의 가치가 지니는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교훈적인 작품이다. 인정을 베푸는 고향의 따뜻한 정을 노래한 이 작품은 할아버지의 이타적인 마음과 서울 조카 아이들의 태도가 대비되어 각박한 인생에 있어 까치밥이 지니는 의미를 부각하고 있다.


  ‘서울 조카 아이들’을 청자로 하여 말을 건네는 방식을 통해 깨달음을 전달하고 있으며, ‘ ~지 말라(말아라)’라는 명령형 어미, ‘ㄹ까’와 ‘~냐’, ‘으니(느니)“ 등 통사구조의 반복과 마지막으로 ‘였으니’로 대상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교훈을 전달할 때 효과적인 구조이다.

 

  연의 구분이 없는 이 시는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10행까지는 날짐승의 등불인 까치밥을, 11~17행까지는 할아버지가 남긴 짚신을, 마지막 18~23행까지는 인생의 등불 같은 까치밥을 표현하고 있다.


 첫 부분에서, 화자는 고향을 찾아온 서울 조카 아이들에게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을 따지 말라’고 한다. ‘까치밥’은 날짐승들을 위해 남겨놓은 감이다. 고향의 참된 의미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날짐승들을 위해 까치밥을 남겨두고자 하는 화자의 의중이 드러나 있다. 1행의 ‘고향’과 3행의 ‘서울’은 서로 대비되는 공간으로, ‘고향’은 따뜻한 공간이지만, ‘서울’은 상대적으로 삭막한 공간을 의미한다. 이어서 화자는 의문의 형식을 활용한 설의적 표현으로 까치밥이 없는 빈 하늘은 ‘얼마나 허전할까’라며, ‘까치밥’은 배 주린 날짐승에게는 길을 내어주는 ‘따뜻한 등불’이라고 한다. 여기서 ‘따뜻한 등불’은 물론 까치밥을 은유(隱喩)하는 것이지만, 날짐승에게 베푸는 인정과 배려, 공존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처럼 ‘까치밥’은 날짐승에게 겨울을 나는 등불이 되고 있음을 밝힌 화자는 둘째 부분에서 ‘짚신’은 사람들에게 길을 나설 때 요긴한 것이라며, 이것 역시 누군가에 대한 배려와 공존을 의미하는 소재로 등장시키고 있다. 즉,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긴, 자신은 신지 않을 ‘짚신 몇 죽’은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기도 하고, 아버지가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을 때도 ‘짚신’이 요긴하게 쓰였음을 지적하여 할아버지의 이타적인 마음이 다른 이들에게 베푼 배려와 공존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아이들아’라고 아이들을 부름으로써,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가야 할 머나먼 길’을 ‘등 따숩게 비춰 줄’ 것이라며, ‘까치밥’이 인생의 등불임을 환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배려의 마음씨가 담긴 ‘까치밥’이 앞으로도 먼 길을 가야 하는 후손들에게 따뜻한 등불이 되어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즉 송수권의 '까치밥'은 날짐승을 위해 남겨둔 까치밥을 중심소재로 삼아 타인에 대한 인정과 배려의 마음이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작품이다.

 

 

▲송수권(宋秀權, 1940 ~ )

 

 

  시인, 전남 고흥 출생. 1975년 《문학사상》에 <산문에 기대어>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남도의 서정과 질긴 남성적 가락으로 부정적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역동적인 경지를 보여준다. 시집으로 《산문에 기대어》(1980), 《꿈 꾸는 섬》(1983), 《아도(啞陶)》(1985), 《우리나라 풀이름 외기》(1987). 《새야 새야 파랑새야》(1987), 《벌거숭이》(1987), 《우리들의 땅》(1988) 등이 있으며, 장편서사시 <동학란>(1975)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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