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신발 / 서정주

by 혜강(惠江) 2020. 6. 15.

 

 

 

 

 

신발

 

 

- 서정주

 

 

   나보고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가 사다 주신 내 신발을 나는 먼바다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에서 장난하고 놀다가 그만 떠내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내 신발은 벌써 변산(邊山) 콧등 밑의 개* 안을 벗어나서 이 세상의 온갖 바닷가를 내* 대신 굽이치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어서 그것 대신의 신발을 또 한 켤레 사다가 신겨주시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용품일 뿐, 그 대용품을 신고 명절을 맞이해야 했었습니다.

   그래, 내가 스스로 내 신발을 사 신게 된 뒤에도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 나는 아직 대용품으로 신발을 사 신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그대로 있습니다.

 

    - 시집《질마재 신화》(1975) 수록

 

 

◎시어 풀이

 

*개 : 강·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내 : 시내보다 크고 강보다는 작은 물줄기. 개천.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어린 시절 잃어버린 ‘신발’을 떠올리며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싶은 순수성에 대한 희구와 본원적 존재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며 주제를 형성하고 있으며, 고백적 어조를 바탕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ㅂ니다’의 종결어미를 사용하여 이야기하는 듯한 어투로 시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동일 대상에 대한 화자의 대비적인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가 사다 주신 ‘신발’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화자가 유년 시절을 상실을 의미이며, 이것은 또한 아버지의 ‘부재(不在)’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화자는 개울가에서 물장난하며 놀다 떠내려간 신발이 바닷가에서 자기 대신 굽이치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아버지가 명절 선물로 사준 ‘신발’은 그냥 단순한 선물이 아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권위와 함께, 화자에게 그 ‘신발’은 어린 시절의 ‘꿈’이나 ‘순수의 이상 세계’ 혹은 사물의 원초적 기억을 바탕으로 한 '원형 이미지'를 상징한다. 화자는 이런 어린 시절의 체험을 통해서 잃어버린 순수성을 지닌 신발에 대한 그리움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본원의 것'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신발이 떠내려간 ‘바다’는 우선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지만, 신발이 ‘이 세상의 온갖 바닷가를 내 대신 굽이치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라는 표현은 ‘아버지’의 부재(不在)라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아버지’의 유랑이 투사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아무튼 ‘바다’는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이며, 아버지의 이미지가 결합된 곳으로 ‘내’가 동경하는 어떤 미지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그 일이 있은 후, 화자는 아버지가 잃어버린 신발 대신 또 한 켤레의 신발을 사 주어 명절을 맞기도 하고, 나이 예순이 될 때까지 ‘신발’을 스스로 사 신으면서도 그것은 대용품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대용품으로 신발을 사 신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그대로 있습니다.’라는 진술은 삶의 본질적 가치를 찾지 못하고, 세속적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것은 ‘아버지’가 사다 준 그 신발, 즉 본원적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 순수의 세계를 향한 화자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이 시에서 ‘신발’은 어린 시절의 꿈, 순수와 이상의 표상이며, 간직하고 싶은 순수성과 영원성을 의미한다. 또, ‘신발’은 삶을 성찰하게 하는 매개체이며 어린 시절의 자아의 표상인 것이다. 시인은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도 어린 시절 잃어버린 ‘신발’을 회상하며 순수한 세계, 본원적 존재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작자 서정주(徐廷柱, 1915~2000)의 시 세계

 

 

   시인. 전북 고창 출생. 호는 미당(未當).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으로 인간의 원죄 의식을 주로 노래하였으나, 후에 불교 사상과 샤머니즘 등 동양적인 사상을 노래한 작품을 썼다. 시집으로 《화사집》(1941), 《귀촉도》(1948), 《신라초》(1960), 《동천》(1968), 《질마재 신화》(1975) 등이 있다.

 

   서정주 시인의 시 세계는 크게 3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1941)에서부터 2번째 시집 〈귀촉도 歸蜀途〉(1948) 이전까지의 시기로,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으로 인간의 원죄 의식을 주로 노래하였고 정열적이며, 관능적인 생명 의식이 그 특징을 이룬다. 〈화사집〉에 실린 〈자화상〉·〈문둥이〉·〈화사〉·〈입맞춤〉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시이다.

 

   두 번째 단계는 제2 시집 〈귀촉도〉(1943)에서 시집 〈서정주시선〉(1956) 이전까지의 시기로, 초기의 관능적인 세계를 벗어나 동양적인 내면과 한국의 전통적 정서와 감성의 세계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다. 이 시기의 대표적 시로는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꽃〉(1945)·〈국화옆에서〉(1947) 등이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시집 〈신라초(新羅抄)〉(1960)와 〈동천(冬天)〉(1968)이 나온 시기로, 신라의 정신과 새로운 동양사상의 탐구가 중심이 된다. 전래의 샤머니즘뿐만 아니라, 노장사상이나 유교까지 받아들이고 있으며 특히 불교의 윤회사상과 인연설에 열중하고 있다. 시집 〈신라초〉(1960)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얻은 '신라적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신라를 하나의 역사적 공간이 아니라 화해에 의해 인간과 자연, 신화가 융합된 초월적 세계로 보았다. 

 

  시집 〈동천〉(1968)에서는 〈신라초〉에서 얻은 동양적 정신을 좀 더 심화시켜 고전적인 절제의 경지를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지칠 줄 모르고 구도자의 행로를 걸어온 시인의 자신감과 원숙의 경지를 입증해주는 한편, 사회와 역사와 멀어진 개인적 구도라는 점에서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관념 세계로의 도피, 형이상학으로의 도피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여섯 번째 시집 〈질마재 신화〉(1975) 에서는 어린 시절 고향 마을 사람들과 풍속을 산문 양식에 담아내 동양적 정신을 확대하여 '고향'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로도 정력적으로 창작활동에 전념해 〈떠돌이의 시〉(1976)·〈산시 〉(1991)·〈늙은 떠돌이의 시〉(1993) 등의 시집을 냈다. <다음백과 참조>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묵죽(墨竹) / 손택수  (0) 2020.06.17
사랑은 야채 같은 것 / 성미정  (0) 2020.06.16
광화문(光化門) / 서정주  (0) 2020.06.14
상리과원(上里果園) / 서정주  (0) 2020.06.14
부활(復活) / 서정주  (0) 2020.06.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