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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사랑은 야채 같은 것 / 성미정

by 혜강(惠江) 2020. 6. 16.

 

 

 

사랑은 야채 같은 것

 

- 성미정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이만 먹었다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야채뿐인 식탁에 불만을 가졌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식탁엔 점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그는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 시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2003) 수록

 

▲이해와 사랑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준비하는 음식들의 변화를 통해,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의 진술은 주로 '그녀'의 관점을 전달하는 것인데 '그'의 태도에 따라 '그녀'의 대응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즉, 시적 화자가 주로 전달하고 있는 내용은 '그'의 행동에 따른 '그녀'의 대응과 그녀의 심리 상태이다.

 따라서, 이 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생각의 변화가 제시되어 있으며, 관념적 내용을 비유를 통해 전달하고, 시구의 반복으로 화자가 드러내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사랑에 대한 성찰을 담은 이 시는 1연에서 사랑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드러낸다. 즉, 사랑이란 야채와도 같아서 ‘씨앗을 심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것이라고 도치법에 의해 강조하고 있다. 2~3연은 그런 사랑을 ‘그’도 이해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를 위하여 식탁 가득 야채를 차리지만 ‘그’의 생각은 달라서 ‘오이만 먹었다’. 이것은 ‘그’가 ‘그녀’의 생각과는 달라서 그녀의 사랑의 일부만을 받아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와 같은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한다.

 그런데 4연에 와서, ‘그녀’는 ‘그’가 ‘야채뿐인 식탁에 불만’을 가진 것을 알고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여기서 그의 불만은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불만인데, 이를 안 ‘그녀’는 ‘그’에 대한 배려로 식탁에 ‘고기’를 올렸다. 그러나 ‘할 수 없이’에서 보듯이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포기한 상태는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래서 5연에서는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하고 고기 같기도 한 것’이라며, 사랑을 재정의하고 있지만, 아직도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

 그러나 6연에 와서 ‘그녀’의 식탁에는 점점 ‘많은 음식’을 올려놓아 ‘그는 그 모든 것’을 맛있게 먹었다’고 진술하면서 ‘사랑’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1~6연까지 계속 변화하다가 7연에서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이라는 인식을 하면서 최종적으로 정리된다. 그녀가 차린 식탁 위의 음식이 ‘야채’→‘오이’→‘고기’→‘그가 먹는 모든 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통하여, 진정한 사랑은 자기중심이 아니라 상대인 ‘그’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이다.

 식탁을 차리는 여자는 영리하다. 고정불변의 사랑 같은 것에 붙잡히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배려와 포용으로 기꺼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이것은 사랑만이 행할 수 있는 마법, 사랑의 열병을 앓는 사람들이 도달하는 따뜻한 긍정의 세계다. 결국,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사랑하는 대상과 함께 하는 것 모두가 사랑일 수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다.

 

▲작자 성미정(1967~ )

 

 시인, 강원도 정선 출생,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삶의 주변에서 소재를 얻어 여성적인 시각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시를 썼다. 시집으로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상상한 상자》,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등이 있고, 동시집 《엄마와 토끼》가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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