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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광화문(光化門) / 서정주

by 혜강(惠江) 2020. 6. 14.

 

 

 

 

광화문(光化門)

 

- 서정주

 

북악(北岳)과 삼각(三角)이 형과 그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형의 어깨 뒤에 얼굴을 들고 있는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어느 새인지 광화문 앞에 다다랐다.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宗敎).
조선 사람은 흔히 그 머리로부터 왼 몸에 사무쳐 오는 빛을
마침내 버선코에서까지도 떠받들어야 할 마련이지만,
왼 하늘에 넘쳐흐르는 푸른 광명(光明)을
광화문 저같이 의젓이 그 날갯죽지 위에 싣고 있는 자도 드물다.

상하 양층(上下兩層)의 지붕 위에
그득히 그득히 고이는 하늘.
위층엣 것은 드디어 치-ㄹ치-ㄹ 넘쳐라도 흐르지만,
지붕과 지붕 사이에는 신방(新房)* 같은 다락이 있어
아랫층엣 것은 그리로 왼통 넘나들 마련이다.

옥(玉)같이 고우신 이
그 다락에 하늘 모아
사시라 함이렷다.

고개 숙여 성(城) 옆을 더듬어 가면
시정(市井)*의 노랫소리도 오히려 태고(太古) 같고

문득 치켜든 머리 위에선
파르르 죽지* 치는 내 마음의 메아리.

(또는, 낮달도 파르르 떨며 흐른다.)

 

- 《현대문학》 (1955.8) 수록

 

◎시어 풀이

 

*소슬한 : 으스스하고 쓸쓸한.

*신방(新房) : 신랑·신부가 첫날밤을 치르도록 새로 차린 방.

*시정(巿井) : 인가가 많이 모인 곳.

*죽지 : ① 팔과 어깨가 이어진 관절의 부분. ② 새의 날개가 몸에 붙은 부분.

 

▲이해와 감상

  경복궁의 남문인 ‘광화문’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잘 알려져 있다. 시인은 광화문에서 민족 고유의 ‘광명’과 ‘평화’ 사상을 발견하여 확신에 찬 어조로 이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민족적인 광명과 평화 사상을 고양하고 있다.

  이 시는 광화문의 배경에 놓인 너무나도 친숙한 국토와 높고 파아란 하늘, '광화문'이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광명한 빛'을 통하여 우리의 전통 사상이 높고 밝고 성스러움을 환기시켜 주고 있으며, 지붕의 곡선미에서는 하늘과 광명을 숭상하던 옛 조상의 슬기를 찾아냄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 고유의 민족 정신을 '광화문'이라는 전통적인 건축물에서 발견하고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이 시는 광화문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고, 다양한 비유적 표현을 활용하여 공간의 상징적 의미를 밝히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북악산과 삼각산을 오누에 비유함으로써 국토에 대한 혈연적 친근감과 다정함을 표현하여 국토에 대한 사랑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연에서는 광화문의 숭고한 모습을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라고 표현하여 우리 민족의 광명 사상이 깃든 종교와 같은 것으로 파악하고, '광화문'이라는 하나의 건축물에서 민족의 사상인 '광명'을 찾아낸 후, 그것을 ‘버선코’와 ‘날갯죽지’의 전통적 곡선미와 결합시켜 표현하고 있다. 즉 버선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하늘로부터 오는 밝은 빛을 떠받들고 사는 우리 민족과 '날갯죽지'(양쪽 기와지붕)에 푸른 광명을 의젓하게 싣고 있는 것으로 비유하여 광화문의 자태(姿態)를 예찬하고 있다.

  3연과 4연은 넘쳐흐르는 광명한 빛을 품은 광화문에 ‘옥(玉) 같이 고우신 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민족적인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광화문의 ‘상하 양층의 지붕 위에 그득히 그득히 고이는 하늘/ 위층엣것은 드디어 치-ㄹ치-ㄹ 넘쳐라도 흐르지만’의 표현으로, 광화문의 전통적인 미(美)를 하늘에 연결시켜 광화문 지붕 위에 그득히 고인 빛(광명)을 고이는 물의 이미지로 변용시켜 노래하고, 또 지붕과 지붕 사이 다락을 ‘신방’으로 표현하여 순결과 사랑이 충만한 민족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옥같이 고우신 이/ 그 다락에 하늘 모아/ 사시라 함이렷다’라며 우리 민족이 항상 어질고 고운 마음씨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5~6연은 ‘시저(市井의 노랫소리도 오히려 태고(太古) 같이 옛 노래처럼 정겹게 들리고, 문득 고개를 돌려 바라본 낮달 또한 옛 하늘에서 보던 대로 여전히 하나의 신비스런 존재로서 우리 민족에게 광명의 대상으로 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서정주 시인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광화문 앞에서 아름다운 상상력을 펼치며 우리 민족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확신에 찬 어조로 드러내고 있다.

 

▲작자 서정주(徐廷柱, 1915~2000)의 시 세계

 

  시인. 전북 고창 출생. 호는 미당(未當).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으로 인간의 원죄 의식을 주로 노래하였으나, 후에 불교 사상과 샤머니즘 등 동양적인 사상을 노래한 작품을 썼다. 시집으로 《화사집》(1941), 《귀촉도》(1948), 《신라초》(1960), 《동천》(1968), 《질마재 신화》(1975) 등이 있다.

  서정주 시인의 시 세계는 크게 3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1941)에서부터 2번째 시집 〈귀촉도 歸蜀途〉(1948) 이전까지의 시기로,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으로 인간의 원죄 의식을 주로 노래하였고 정열적이며, 관능적인 생명 의식이 그 특징을 이룬다. 〈화사집〉에 실린 〈자화상〉·〈문둥이〉·〈화사〉·〈입맞춤〉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시이다.

 두 번째 단계는 제2 시집 〈귀촉도〉(1943)에서 시집 〈서정주시선〉(1956) 이전까지의 시기로, 초기의 관능적인 세계를 벗어나 동양적인 내면과 한국의 전통적 정서와 감성의 세계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다. 이 시기의 대표적 시로는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꽃〉(1945)·〈국화옆에서〉(1947) 등이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시집 〈신라초(新羅抄)〉(1960)와 〈동천(冬天)〉(1968)이 나온 시기로, 신라의 정신과 새로운 동양사상의 탐구가 중심이 된다. 전래의 샤머니즘뿐만 아니라, 노장사상이나 유교까지 받아들이고 있으며 특히 불교의 윤회사상과 인연설에 열중하고 있다.

  시집 〈신라초〉(1960)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얻은 '신라적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신라를 하나의 역사적 공간이 아니라 화해에 의해 인간과 자연, 신화가 융합된 초월적 세계로 보았다.

  시집 〈동천〉(1968)에서는 〈신라초〉에서 얻은 동양적 정신을 좀 더 심화시켜 고전적인 절제의 경지를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지칠 줄 모르고 구도자의 행로를 걸어온 시인의 자신감과 원숙의 경지를 입증해주는 한편, 사회와 역사와 멀어진 개인적 구도라는 점에서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관념 세계로의 도피, 형이상학으로의 도피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의 여섯 번째 시집 〈질마재 신화〉(1975) 에서는 어린 시절 고향 마을 사람들과 풍속을 산문 양식에 담아내 동양적 정신을 확대하여 '고향'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로도 정력적으로 창작활동에 전념해 〈떠돌이의 시〉(1976)·〈산시 〉(1991)·〈늙은 떠돌이의 시〉(1993) 등의 시집을 냈다. <다음백과 참조>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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