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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구두 / 송찬호

by 혜강(惠江) 2020. 6. 22.

 

 

 

 

구두

 

 

- 송찬호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 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

 

- 시집 《10년 동안의 빈 의자》(1999)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구두를 새장에 비유하여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의지, 즉 자유로운 비상의 꿈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미지의 자유로운 연상을 바탕으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즉, ‘새장→구두→감옥’ 등 자유로운 연상(聯想)과 이미지의 결합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비유와 대비를 통해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가죽 구두는 지상적인 삶에 얽매여 지내는 현대인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새장에 갇혀 지내는 새의 모습처럼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자유롭게 비상하지 못하고 얽매여 지내는 현대인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시인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 구두를 구름 위에 올려 놓는다. 가뿐하게 지상을 벗어나 비상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작품은 지상에 놓여 지낼 수밖에 없는 구두로부터 현대인의 초상을 읽어 내고, 또 자유롭게 비상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나타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화자는 1연에서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이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새장’과 ‘작은 감옥’의 원관념은 ‘구두’이다. ‘가죽으로 만든 것’,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에서 이를 알 수 있다. 화자에게 구두는 자신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답답한 존재인 것이다. 이는 화자의 현재 상황과 정서를 드러낸다. 2연의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의 표현은 새가 날아오를 수 있도록 현실의 구속은 작아져야 함을 작아져애 한다는 의미이다.

 

  3연에서 화자는 시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화자는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넣는다. 모자나 구름은 본래의 자유로운 새를 의미하지만, 새장 속의 새들은 날지 않는다. 왜냐하면, 날지 않고도 ‘먹이통과 구멍’을 통해 먹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편안함에 익숙해져 자유로운 비상을 잊고 사는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의미한다. 그래서 ‘새장’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런데 4연에 오면, 화자는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라고 한다. 여기서 ‘새 구두’는 자유로운 삶으로 비상하기 위한 매개체로서 비상을 위해 준비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 5연에서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라고 표현함으로써 화자는 새가 되어 날고 싶어 하는 소망, 즉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고 있다.

 

  이처럼 현실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모습이 발끝에서부터 확산된다. 반짝거리고 굽 높은 새 구두는 미래의 삶에 대한 위로이자 작은 욕망이기도 하다. 지상의 삶이 끌어당기는 중력과의 접점에 간신히 붙들려만 있지 않고 폴짝 구름 위 자유로운 공간까지 뛰어올라 머무르고 싶은 것이다.

 

  이 시는 일관된 의미의 흐름을 드러내기보다는 자유로운 연상을 통해 이미지의 계속적인 확산을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이 시에서 '새 구두'는 미래의 삶에 대한 조그만 희망이자 위로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작자 송찬호(宋粲鎬, 1959~ )

 

 

   시인. 충북 보은 출생.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에 〈금호강〉 등을 발표하여 등단했다.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984), 《10년 동안의 빈 의자》(1994), 《붉은 눈, 동백》(2000),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2009) 등이 있다. 그의 첫 번째 시집은 시적 구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삼아 언어를 '존재의 집'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중심을 이룬다면, 두 번째 시집은 그런 언어의 한계에 대한 구체적인 자각과 도전을 보여 준다. 그에 비해 세 번째 시집 <붉은 눈, 동백>은 앞의 두 시집 사이의 심도 있는 조화를 꾀하고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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