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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산에 대하여 / 신경림

by 혜강(惠江) 2020. 6. 24.

 

 

 

 

산에 대하여

 

 

- 신경림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지막히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 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는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순한 길이 되어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즛*
따뜻한 사랑의 숨을 자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낮은 산은 내 이웃이던
간난이네 안방 왕골자리*처럼 때에 절고
그 누더기 이불처럼 지린내가 배지만
눈개비나무 찰피나무며 모싯대 개쑥에 덮여
곤줄박이 개개비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듣는 기쁨은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서 잡아죽일 듯
이빨을 갈고 손톱을 세우다가도
칡넝쿨처럼 머루넝쿨처럼 감기고 어우러지는
사람 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만이 아니듯
다 외치며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듯
산이라 해서 모두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모두 흰 구름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깨로 바람 맞받아치며 사는 것은 아니다

 

- 시집 《가난한 사랑 노래》(1988) 수록

 

 

◎시어 풀이

 

 

*짐즛 : ‘짐짓’의 옛말.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으나 일부러 그렇게.
*왕골자리 : 왕골을 굵게 쪼개어 엮어 만든 자리.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크고 높은 산이 아닌 ‘낮은 산’이 지닌 특성을 바탕으로 소박한 삶의 기쁨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이 시는 낮은 산의 모습과 행동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낮은 산을 관찰하고 있는 시적 화자는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세상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을 보이고 있다.

 

  표현상으로 볼 때, 이 시는 높은 산과 낮은 산의 대비를 통해 주제 의식을 강조하고 있으며, ‘아니다’라는 부정적 진술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크고 높은 산만을 우러러보고 선망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에 대해 낮은 산으로 상징되는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삶도 가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시의 핵심적인 소재는 ‘낮은 산’이다. 화자는 산이 모두 크고 높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며 산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에 대한 거부한다. 그리고 화자는 ‘산’을 의인화하여 인격을 부여하여 표현함으로써 ‘낮은 산’을 긍정적인 태도로 바라보고 애정 어린 시선을 드러낸다. 즉, ‘낮은 산’의 모습은 ‘시시덕거리며 웃으며 나지막이 엎드려 있’는 겸손한 존재이며, ‘동네까지 내려와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하’는 친근한 존재이며,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편한 길이 되어 주’는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이며, 젊은 연인에게 ‘사랑의 은신처’가 되는 타인을 배려하는 존재이며, 힘들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작고 소박한 일에 기쁨을 느낄 줄 알고, 서로 다투고 화해하고 다시 웃을 줄 아는, 사람 사는 재미를 아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낮은 산’의 모습은 화자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며, 이를 통해 화자는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 시는 산 중에서도 ‘낮은 산’을 중심 소재로 삼아 화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주제 의식의 전달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는 이 세상 낮은 곳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시인의 따뜻한 애정과 관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자 신경림(申庚林, 1936 ~ )

 

 

  시인. 충북 충주 출생. 1955년 《문학예술》에 <갈대>, <묘비>, <낮달>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1973년에 펴낸 첫 시집 〈농무(農舞)〉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깔린 농촌 현실을 기초로 하여 민중들과 공감대를 이루는 시로 평가받고 있다.

시집으로 《농무》(1973), 《새재》(1979), 《달넘세》(1985), 《남한강》(1987), 《우리들의 북》(1988), 《길》(1990) 등이 있다. 주로 농촌을 배경으로 우리의 현실과 한, 울분, 고뇌 등을 다룬 시를 썼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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