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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세한도(歲寒圖) / 송수권

by 혜강(惠江) 2020. 6. 20.

 

 

 

세한도(歲寒圖)

 

 

- 송수권

 

 

먹 붓을 들어 빈 공간에 선을 낸다.

가지 끝 위로 치솟으며 몸놀림 하는 까치 한 쌍

이 여백에서 폭발하는 울음 …….

 

먹 붓을 들어 빈 공간에 선을 낸다.

고목나무 가지 끝 위에 까치집 하나

더 먼 저승의 하늘에서 폭발하는 울음 …….

 

한 폭의 그림이

질화로같이 따숩다.

 

             - 시집 《꿈꾸는 섬》 (1982) 수록

 

 

◎시어 풀이

 

*세한도 : 추사의 그림, ‘세한’은 설 전후의 추위라는 뜻으로, 매우 심한 한겨울의 추위를 이르는 말.
*질화로 : 질흙으로 구워 만든 화로.
*따숩다 : ‘따습다’의 전라도 방언. 날씨 또는 마음 등이 따뜻하다.

 

 

▲이해와 감상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통해 굳은 절개와 의지를 강조한 작품으로 여러 시인에 의해 시로 형상화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세한도(歲寒圖)’에 시인의 상상력을 덧붙여서 시적 의미를 형상화한 시로, 삶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된 세계라는 깨달음과 함께 삶과 죽음을 서로 대응시킴으로써 추위(세한)를 극복하고 있다.

 

  이 시는 현재형 시제를 사용하여 시적 상황의 현장성을 살려주고, 동일 시행을 반복하여 의미를 강조하는 한편, 말줄임표로 생략과 여운의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 시는 김정희의 그림 <세한도>를 토대로 써진 작품으로, 기존의 그림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다는 독특한 발상을 통해 시적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세한도’가 드러내는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시인은 추사 김정희의 그림 <세한도>를 바라보고 있으나 그 속에 담겨 있는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독특하고 개성적인 상상력을 활용하여 그와는 다른 세계를 그려 내고 있다.

 

  1연에서 시인은 시적 화자로 하여금 ‘세한도’의 빈 공간에 상상으로 까치를 그려 넣는다. 그것은 길조(吉鳥)로 인식되는 '까치 한 쌍'인데, 이들은 나뭇가지 끝 위로 치솟으며 '폭발하는 울음'을 통해 여백의 정적을 깨뜨린다. 아무것도 없는 듯한 빈 공간에 울려 퍼지는 이 까치의 울음소리는 화자가 추가한 세계이며, 동시에 화자가 찾아낸 '여백'의 의미이다. 그림의 여백에서 저승에서 들려오는 까치의 울음소리를 느끼게 함으로써 삶과 죽음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화자는 이를 통해 '세한(歲寒)'이 가지고 있는 차가운 이미지를 따뜻한 이미지로 전환시키고 있다.

 

  2연에서 화자는 역시 상상으로 까치의 보금자리라 할 수 있는 '까치집'을 새로 그려 삶과 죽음이 그림 안에서 조응하게 한다. 화자는 빈 공간에 ‘까치집’을 그려 '더 먼 저승의 하늘'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 '까치집'은 살아 있는 까치의 집이 아니다. 까치의 울음이 이승이 아닌 저승의 하늘에서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까치집'은 주인을 잃고 버려진 집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이승의 하늘'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와 조응하면서 삶과 죽음 사이의 연속성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3연에서 화자는 자기가 그린 ‘한 폭의 그림이/ 질화로같이 따숩다’고 한다. 이것은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따뜻한 세상을 의미한다. 즉, 화자가 그려 낸 세상이 삶과 죽음을 단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속되는 세상으로 보기 때문에 버려진 '까치집'은 상실의 아픔이 아니라 죽은 까치의 보금자리가 보존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저승에서의 까치 울음소리 역시 이승과 저승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화자는 혹독한 추위를 나타낸 '세한도'에 삶과 죽음이 서로 함께하는 따뜻한 세상을 그려 냄으로써, 새로운 시적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기존의 미술 작품 <세한도>가 지조와 절개가 돋보이는 겨울의 추위를 강조했다면, 이를 토대로 한 이 시에서는 김정희의 그림에 ‘까치 한 쌍’과 ‘까치집’을 추가하고, 저승의 하늘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통해 삶과 죽음을 연결시켜 추위를 극복하는 따뜻한 세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 대한 이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는 김정희에게 두 번씩이나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며 그에게 답례로 그려 준 것이다.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하여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보여 주고 있다. 마른 붓질과 묵의 농담, 간결한 구성 등은 지조 높은 김정희의 내면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송수권(宋秀權, 1940 ~ )

 

 

  시인, 전남 고흥 출생. 1975년 《문학사상》에 <산문에 기대어>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남도의 서정과 질긴 남성적 가락으로 한민족의 한과 부정적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역동적인 경지를 보여준다. 시집으로 《산문에 기대어》(1980), 《꿈꾸는 섬》(1983), 《아도(啞陶)》(1985), 《새야 새야 파랑새야》(1987), 《벌거숭이》(1987), 《우리들의 땅》(1988),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1991) 등이 있으며, 장편서사시 <동학란>(1975)이 있다.

 

 

◎ ‘세한도’를 소재로 창작된 작품들

 

*박현수의 <세한도>(1992,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최두석의 <세한도> (1997, 시집 :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고재종의 <세한도>(1998, 창작과 비평 99호)

*곽재구의 <세한도>(1998. 시집 : 사평역에서)

*유안진의 <세한도 가는 길> (2000. 시집 : 봄비 한 주머니)

*박신지의 <세한도> (2002, 시집 : 봄은 쟁기질하며 온다)

*이근배의 <세한도–벼루 읽기>(2004, 시집 :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오두영의 <세한도>(2004, 시산문집 : 세한도)

*도종환의 <세한도>(2010, 시집 : 마음의 쉼표)

*서정춘의 <세한도>(2010, 시집 : 물방울은 즐겁다.)

*정호승의 <세한도>(2014, 시선집 : 내가 사랑하는 사람)

*용창선의 <세한도를 읽다>(2015,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주용일의 <세한도>(2016, 유고집 : 내 마음에 별이 뜨지 않은 날들이 참 오래되었다)

*박상희 <세한도>(2017. 계간 : 시에)

이 외에도 김선태, 김제균, 김현미, 류윤모 시인 등 다수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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