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石榴) / 정지용
석류(石榴) - 정지용 장미꽃처럼 곱게 피어 가는 화로에 숫불, 입춘 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겨울 지난 석류 열매를 쪼개어 홍보석(紅寶石)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여릿여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 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 《정지용시집》(1935) 수록 ◎시어 풀이 *새론 : 사이로는. *여릿여릿한 : 부드럽고 약한. *시..
2020.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