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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남상학 교장의 《아름다운 동행》을 읽고 / 홍영일

by 혜강(惠江) 2020. 8. 27.

 

남상학 교장의 《아름다운 동행》(뿌리)을 읽고

 

 

삶의 과정에서

함께한 이들은 모두 "아름다운 동행자(同行者)"

 

- 홍영일(전 염광고등학교장)

 



  남상학 교장(전 숭의여고)이 자서전을 발간하였다. 신앙 간증집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는 꽃재교회 장로이기도 하다. “이제야 어렴풋이 그 끝이 보이는 긴 여행의 뒤안길, 그 길에서 쓰는 절대주를 향한 사랑의 고백록”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볼 때,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동행하시며 삶의 모든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개입하셨고, 인도해 주셨으며, 섭리해 주셨다. 기독교적인 이념에 따라 운영하는 학교에서 16년간 교장으로, 꽃재교회에서 31년간 장로로 지낸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뜻을 같이하는 동료 선생님과 성도들이 좋은 동행자였다. 더군다나 좋은 반려자를 맞아 동행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큰 선물이었다.”

 

  시로 압축된 문장을 풀어놓으면 자서전이 되지 않았을까? 남상학 교장은 50세 나이에 시 문단에 정식 등단하였지만, 그 전에도 때때로 시를 써서 정리해 둔 것이 이번 자서전의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가장 낮은 목소리>등 5권의 시집을 이미 출간한 바 있다. 그는 블로그 “시솔길을 함께 걸어보실까요”(https://nam-sh0302.tistory.com) 운영 중이다.  교직에서 35년을 보냈다.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으면서도 그는 늘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내 어설픈 35년 길/ 고마운 손길들, 얼굴들 있어/ 마냥 행복하였더니라.// (중략) 내 숲은 여전히/ 새 한 마리 깃들 그늘도 없이/ 앙상한 가지만 남아/ 먼지뿐 물 없는 모래밭 길// 그래도 이 길 쓸고 닦아/ 꽃길로 장식하는 예쁜 마음들/ 티끌 한 점 없는 사랑하는/ 그대들아 용서하라." <마침표를 찍으며>(정년을 앞두고)에서

 그는 서슴지 않고 아내에 대하여 "분수에 넘치는 좋은 배필"이라며 고마움을 표한다. 이런 생각이 아내에 대해 주옥같은 시를 쓰게 했다.

  "아이들이 바깥에서 놀다 돌아오면/ 어둠을 묻혀 왔을까 조바심하는 눈치/ 어쩌다 밤늦게라도 내가 돌아오는 날에는/ 한숨을 숨겨왔을까 안절부절못하면서/ 세상에서 묻혀 온 어둠과 한숨은/ 재빠른 아내의 손끝에서/ 곧바로 시커먼 땟국으로 빠지고" <아내의 빨래>에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기쁨을 퍼내듯/ 길어도 길어도/ 마르지 않을 행복을 길어/ 내 작은 포도원을/ 평생 풍요롭게 가꾸는/ 나의 사람, 나의 여인아" <나의 사랑, 나의 여인아>에서

  이번 자서전을 통해서 아내에게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려는 듯이 여학교 교사로 흔히 있을 수 있었던 일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고백하며 밝히고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 학원 문학상을 받아 특기생으로 들어 온 동급생 여학생이 만원 버스 안에서 “우린 몇이나 낳을까?”라는 말로 당돌한 프러포즈를 한 이야기도 있다. 그와 관련된 글이 <복사꽃 추억>에,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쓴 시가 <애도별곡>이다.

   고3 때 국어 선생님으로 만난 경아를 그녀의 고향에서 다시 만나고, 또 그녀가 결혼한 후 LA에서 다시 만난 이야기도 있다. 정열적이던 해당화 같은 제자 명자 이야기는 선생님 같은 남자를 찾다가 결혼이 늦었다는 학생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 준 이야기도 재미있다. (<해당화 꽃>이란 시가 있다.) 정감이 풍부한 제자, “선생님 제게 무엇을 해주려고 하진 마세요, 다만 거기 그 자리에 계셔 주세요.”라며 무시로 보내 주던 제자의 편지가 여러 장 소개되어 있다. (<목련>이란 시가 있다.)

  남 교장은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관계는 훗날 멋진 추억으로 피어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을 이성 간의 관계로 설정해 놓고 이상한 시각으로 경솔하게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불안정한 청소년 시기에는 장래가 불안하여 홍역을 치르기 마련인데 학생들이 힘들고 어려워할 때 교사는 상담자로서 멘토의 대상으로서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내게 고향 같은 선생님 한 분 계셨으면 하고 바라는 이들의 꽃이 되고 싶어했다.” 김춘수 시인의 시를 인용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허탈감, 좌절감, 배신당한 기분이 들 때, “내가 낳은 아이도 힘든데, 남의 아이들 교육하는 일이 쉬울 줄 알았느냐”는 아내의 격려도 큰 힘이 되었지만, 제자가 보내 준 <마음의 고향 같은 선생님>이란 말에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내게 고향 같은 선생님/ 한 분 계셨으면/ 시외버스로 두어 시간이면/ 달려갈 수 있는 동네/ 사립문 활짝 열려 있고/ 늦도록 남포 불 내걸려 있는 집/ 그리운 흙냄새와 낯익은 풀꽃들/ 서리서리 벌레 울음도/ 가슴 속에 품고 계신 분/ 내게 그런 선생님 한 분 계셨으면”

  교직 생활 36년간에 겪었던 시련들이 있었다. 1985년 재정적 사고로 갑자기 출국 해버린 박동선 이사장과 송화 교장, 1987년 집중호우로 학교를 덮친 남산의 산사태, 복구 작업은 물론 어느 때보다 안정을 이끌어 주었던 이준 이사장이 1995년 경영하던 삼풍백화점의 붕괴사건으로 혼란에 빠지게 된 일이 있었다.

 

  1989년 전교조 합법화로 황폐해진 교육 현실, 교사를 노동자로 자처하는 피폐한 교육 현장, 친북 좌 편향 교육은 불안을 낳고 말았다. <빌라도의 기도>는 빌라도의 변명이 담겨 있다. 빌라도는 대야에 손이라도 씻었지만, 요새 일부 편향된 판사들은 잘못된 판결을 훈장으로 생각하니 걱정이다.

   “진실로 나, 이대로 영원한 어둠 속에
   벌 받고 죽어야 옳음일 것을 마땅히 알건마는
   한 생명이라도 구원함이 당신의 뜻이라면
   피 흘리는 어진 손길로 어루만져 주옵소서.” -<빌라도의 기도>에서

  그에게도 가정적인 고난이 있었다. 태어나기는 서산이지만, 가난한 빈촌 이작도 섬에서 교사로 생활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들어가서 가난을 이기기 위해 추수를 끝낸 밭에서 고구마 줍기, 굴 따고 바지락 캐기, 마른 나무등걸을 도끼로 찍어 땔감을 마련하기도 했다. 

 

   6ㆍ25전쟁을 겪었고, 다시 영월로 옮겼다가 부친이 병환으로 46세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의식주보다는 자녀교육을 절실하게 생각하시어 영월에서 제천으로, 다시 서울로 터전을 옮기셨다. 행상으로 노점상으로 기차역 앞에서 야간열차 손님을 맞는다고 새벽 1시까지 고생을 하셨다. 모친은 59세에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올곧은 삶의 태도와 어머니의 지혜로운 지도와 희생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둘째아들이 4살 때 유리파편으로 망막 손상을 입은 엄청난 시련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이대 약학과 졸업)와 큰아들 석우(서울치대 졸, 남앤유서울치과의원 운영), 큰 자부(서울더치과 개업운영), 둘째 아들 경우(서강대 경영학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MBA, 삼성전자 차장), 작은 자부(연세대학교 졸업, 영락고등학교 보건교사) 그리고 서연이를 비롯한 5명의 손자 손녀로 로열 패밀리라는 소리를 듣는다.


  “누이 따라 굴 따러 나선/ 애 띈 열한 살/ 얼어붙은 무인도에 노을이 잠기면/ 뼈마디 관절 뚝뚝 분지르는/ 매서운 바람 불고, 파도가 일고/ 뱃멀미로 토악질한 바위에 닥지닥지/ 굴껍질 하얗게 웃고 있었지.” -<추억 1-유년의 기억들>에서

 “크나큰 사랑, 오늘 밤 나는 숭늉 냄새가 그립다/ 어머니가 그립다.” -<숭늉 냄새가 그립다>라는 사모곡 중에서

 “저무는 바닷가 노을에 젖어/ 다정한 음성으로 푸르게 일깨우는/ 한평생 바다로 살아오신 / 한결같은 모습의 내 어머니”- <바다에 오면> 중에서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불붙는 열정으로 청춘을 쏟아부었던 숭의 동산에, 엄동설한의 추위도 이겨내고 피어나는 개나리 같은 학생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면서 살았다. 세월이 지난 먼 훗날이라 할지라도 어딘가 반짝일 보석을 위하여 지불한 인생, 그 보석으로 하여금 늘 부자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대 위해선/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아아, 나의 청춘이 피워낸 꽃 ”-<개나리>에서

 “못다한 손길 부끄러워/ 온몸을 휘감아 도는 아픔이/ 자욱한 한숨이 되어/ 내 가슴에 저려오지만” -<그 이름 보석이 되어>에서

 

   남 교장의 삶은 절대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62년 대학 3학년 때 현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독교밖에 없음을 논술한 <현대 지성과 전환의식(轉換意識)>이 가작으로 입선하였다.  또 4학년 때 허무주의와 절망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극복하고자 조병화의 시에 나타난 허무주의를 규명하여  쓴 <한국적 허무주의(虛無主義)의 고찰>이란 제목의 논문이 당선되어 《이십 세기의 한국》(전 7권 중 5권 「20세기의 한국」에 수록되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 그때 쓴 논문 전문이 이 자서전에 실려 있다.

 

  빈곤과 데모의 행렬과 구호 등 정치적 불안 속에서 보낸 날들을 회상하는 졸업 기념 수필 <피날레의 지점에서>가 《고대문화》에 실렸었다고 한다.


  남 교장의 시가 추구하는 것은 ‘영원’에 대한 그리움이요, ‘하늘’이나 ‘바다’로 형상화한 것이다. 시에 자주 나타나는 ‘보석’  진주’ ‘빛’  ’별’  ‘불’ ‘불씨’는 절대자를 나타낸 언어이고, ‘피’ 금빛’ ’해’ 혹은 ‘별’ 역시 또 다르게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인간 구원에 대한 믿음으로 ‘밝음’ 과 ‘소망’을 지닌 사람으로 긍정적인 세계관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자녀 교육의 텍스트로서 성경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라고 말한다.


  “긴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오직 가벼운 영혼 하나/ 소중히 챙긴다.” -<가벼워지는 연습>에서

  "사라지는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건/ 불붙는 바다, 그 낙조 속으로/ 한평생 당신을 향한 젖은 눈으로/ 그리움 찾아 유유히 사라지는/ 배 한 척, 그 돛대 위에 빛날/ 내일의 깃발이 있기 때문이다.”-<떠남의 미학>에서

 

  책 마지막에는 매일 드리는 새벽기도가 명상노트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다. “ 바다는 모든 허물을 덮고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맞아주는 어머니의 품입니다. 얼마 동안 잊었다가 찾아가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우리들의 고향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지친 몸으로 찾아갈 때 두 팔을 벌려 우리를 안아주십니다. 바다는 내게 출렁이는 영원한 쉼터, 당신의 마음입니다. 이제 옹졸한 가슴을 펴고 달려가 그 품에 안기게 하십시오. 그 품에서 출렁이며 파도치는 가슴으로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 <명상노트 17> 중에서


   여행기도 실려 있다. <성서의 자취를 따라서>(이스라엘 출애굽 여정 등이 가이드보다 더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와 설교(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등)가 담겨 있다. ‘바람의 딸’ 한비야가 숭의여고 출신이라 그런지 남상학 교장도 여행 마니아이다. 국내 여행, 외국 여행의 여행기와 소감문이 실려 있다.

 

  그의 블로그 <시솔길을 함께 걸어보실까요>에 들어가면 사진을 곁들인 여행기와 정보도 볼 수가 있다. 요즘은 식사비용 포함해서 10,000원이면 넉넉한 여행을 할 수 있다며 <10,000원의 행복>이라고 좋아한다. 그리고 집 근처의 양재천 걷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간단한 복장으로 부부가 같이 걷는 자체가 행복이라고 한다.


  내가 시집을 제대로 읽어 본 것은 홍승주 작가의 진솔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숨김없이 표현한 《넋 새가 운다》 등 시집과 소박한 유언장을 써 놓고 사시는 애국자 김영의 교장의 《비취 빛 삶이고 싶어》 등 몇 권이 있다. 이제 모범생 남상학 교장의 시가 추가되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글쓴이 : 홍영일(전 염광여고 교장)
(411-709)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1동 734 백마마을 청구Apt. 412동 20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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