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전에세이/아름다운 동행

유적을 보려거든 앙코르(Angkor)로 가라

by 혜강(惠江) 2011. 7. 20.

 

유적을 보려거든 앙코르(Angkor)로 가라
                       

 

· 남상학

 

 

캄보디아 앙코르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앙코르와트를 중심으로 반경 30㎞ 이내에는

수십여 개의 사원과 1,000여 개가 넘는 건물들이 산재해 있다. 

 

 

 

* 199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교도들의 성지 앙코르유적, 동트는 새벽 앙코르유적을 배경으로 우리 부부  *

 

  흔히 사람들은 캄보디아를 여행하면서 ‘앙코르 와트(Angkor Wat)’로 간다고 말한다. 앙코르를 방문했던 역사가 토인비는 ‘이런 아름다운 앙코르에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했다. 1860년 밀림 속에 묻혀있던 유적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프랑스의 생물학자 앙리무어는 ‘앙코르 와트는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세운 그 어느 신전보다 더 장엄하다’고 말했다. 비록 그 위대한 문명의 주인 크메르 왕국은 전설처럼 사라졌지만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은 인류가 가진 수많은 문화유산 중에서 최고라 할 만하다. 캄보디아 불교도들의 성지 앙코르 유적은 199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 사원은 수르야바르만(Suryavarman) 2세(통치: 1112~1152년)가 자신의 장례 사원으로 지어 힌두신인 비슈누에게 봉헌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원이 동쪽을 향해 있는 것과 달리 앙코르 와트가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이 사원이 묘지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도시의 사원’이란 말로 번역되는 앙코르 와트를 단순히 글로 표현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소름이 끼치도록 전해져 오는 감동을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허구이며 사치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앙코르 지역에서 가장 큰 사원인 앙코르 와트는 인류에게 선물한 가장 아름다운 걸작품중 하나이다. 입구에서부터 중앙 사원의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이 감동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마치 시간대가 다른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사원은 190m 넓이의 해자에 둘러 싸여있으며, 사원의 크기는 동서로 1.5km, 남북으로 1.3km로 거대하다. 사원은 웅대한 방추형의 중앙탑과 탑의 동서남북에 십자형으로 뻗어 있는 회랑, 그것을 둘러싼 삼중의 회랑과 회랑의 네 모서리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 등으로 이루어져 힌두교의 우주관에 입각한 우주의 모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앙에 있는 탑의 높이는 55m나 된다. 7t짜리 기둥 1,800개, 돌로 된 방은 260개나 된다. 중앙 탑은 신화 속의 신들이 사는 수미산의 다섯 봉우리를 나타내며, 뜰은 대륙을 상징한다. 12세기 초에 건축된 앙코르 와트의 원래 모습이 많이 훼손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각 방마다 존재했던 수 백 개의 진귀한 신들의 조각품과 보석 장식들은 현재 만나볼 수 없다. 천상의 무희인 앙코르의 압사라는 우아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바라보면 볼수록 즐거움과 행복감을 선사한다. 앙코르 와트의 장대함과 화려함, 그리고 완벽한 균형미는 성스러움 그 자체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앙코르 와트를 중심으로 반경 30㎞ 이내에는 수 십 여개의 사원과 1000여 개가 넘는 고대 건축물들이 산재해 있다. 하루 이틀 만에 앙코르 지역을 둘러본다는 것은 난센스다. 어차피 늘릴 수 없는 시간이라면 최소한 앙코르 톰(Angkor Thom)의 ‘바이욘 사원’과 앙코르 동부의 ‘따 프롬’은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이다.  ‘거대한 도시’ '위대한 도시'라는 뜻을 가진 앙코르 톰은 크메르 제국이 9세기에서 13세기 사이 건설한 백 여 개의 사원과 신전 가운데 하나이다. 앙코르 톰은 앙코르 와트처럼 특정 건축물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한때 1백만 명이 살았다는 앙코르 왕국의 수도였던 성곽도시 그 자체를 뜻한다.

  앙코르 톰의 정중앙에 위치한 바이욘 사원(Bayon temple)은 규모는 앙코르 와트보다 훨씬 작지만 거대한 얼굴 조각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1층과 2층은 사각형, 3층은 원형을 이루고 있다. 앙코르 와트보다 1세기 뒤에 건립된 이 사원은 힌두교 위에 승화된 불교 사원으로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앙코르 유적지 안에서 대표적인 대승불교 사원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반인의 눈으로 얼핏 보기에는 이곳이 불교사원이라는 것을 알아내기는 매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조각 속 간간이 눈에 띄는 관세음보살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힌두 설화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라미드형인 바이욘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부모에게 헌정한 것이라고 한다. 어렴풋한 사람의 얼굴 형상을 바라보면서 사원 안으로 들어서면, 앙코르와트와 마찬가지로 사면에 회랑이 펼쳐져 있다. 외벽 벽면에는 앙코르 제국의 전승기록 즉 크메르군의 위풍당당한 행진이 펼쳐지고 있고, 전투 장면, 당시의 생활상 등을 생생하게 그린 부조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입구 기둥에 새겨진 압사라(천사)들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두세 명씩 짝지어 연꽃인 듯한 식물 위에서 춤추고 있는 압사라들의 모습은 앙코르와트의 압사라들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역동적인 춤사위가 익살맞기도 하고 표정 또한 재미있다.

  숨바꼭질하듯 2층의 회랑을 돌고 나서 3층에 오르면 그동안 말로만 듣던 바이욘의 사면상이 상상이상의 감동을 준다. ‘앙코르의 미소’로 불리는 큰 바위 얼굴은 관음보살이자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 천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자비로운 얼굴로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이곳에서는 동서남북을 모두 둘러봐도 이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을 피할 수가 없는 구조이다.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때는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는 무소불위의 권세를 지닌 왕이었으나, 그 역시 최후에는 나병에 걸린 채 우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사면상이 조각된 탑은 모두 54개가 건설되었지만 현재는 36개의 탑만이 남아 있다. 200여 개의 거대한 두상에 휩싸여 있다고 상상해보라. 아마도 이곳이 인간 세계임을 망각하고 말 것이다.

  또 앙코르 동부의 ‘따 프롬(Ta Prohm)’이란 ‘브라만의 조상’이라는 뜻으로 자야바르만 7세가 1186년 어머니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다. 당시에는 3,000명에 가까운 승려가 살던 대규모 사원이었지만 지금은 발견된 당시의 폐허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앙코르 유적 중에서 가장 고색창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현재 이 사원은 자라는 나무들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어 있고, 프랑스 고고학자들은 자연의 파괴력이 어떻게 인간의 유적을 파괴하는지 알려주기 위해서 방치를 해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원 곳곳에 유물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사원의 담벽과 건물을 자이언트 팜나무(스펑)의 뒤엉킨 뿌리가 이 사원의 벽과 기둥을 뱀처럼 휘어 감싸고 뒤틀려 사원은 그 형체가 마치 지옥을 연상케 한다.다. 최근 개봉된 영화 툼레이드에서 여러 팔이 달린 불상이 덤벼드는 유명한 액션 장면의 촬영지로 알려져 더욱 관심을 끌고 있는 사원이다. 아무리 인간의 힘이 위대하다 해도 자연 앞에 인간의 힘과 노력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는 공간이며, 무너진 사원 속에서 있으면 마치 인디아나 존스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  거대한 도시’ 앙코르 톰 안에는 ‘바이욘 사원’과 앙코르 동부의 ‘따 프롬’ 외에도 바푸온(Baphuor) 사원이 있다. 바이욘 사원의 북서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사원은 힌두 사원으로 시바에게 바쳐진 것이다. 앙코르 톰 안에 있지만 앙코르 톰 건설 이전에 우다야딧야바르만 2세에 의해 만들어졌다. 높이 솟은 피라미드형의 사원은 앙코르 와트나, 바이욘처럼 똑같이 수미산을 형상화시켜 놓았다.  바이욘 사원보다 200년 정도 앞선 바푸온 사원은 공사 중이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다만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또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만든 코끼리테라스와 문둥이가 된 자신의 신세를 슬퍼하며 건설한 문둥왕 테라스, 전자는 코끼리 머리상이 남성적이면서도 섬세한 터치로 새겨져 있는 반면 문둥왕 테라스는 그 조각이 희로애락의 감정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유적지는 어떻게 건설됐을까. 현지인들은 천연덕스럽게 신들이 지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런 거대한 왕국이 어떻게 감쪽같이 사라졌을까. 전염병 때문이라는 학자도 있고,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앙코르인들을 다 죽이고 떠났다는 학설도 있다. 또 잇단 외세의 침략에 수도를 옮겼다는 설이 있지만, 1백만 명의 대이동이라면 인접국가의 역사에도 나올 법한데 아직 어떠한 단서도 없다. 전염병이라면 유골이라도 남아있을 법한데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모두가 아직은 미스터리요 오리무중이다.

  이 유적은 앙코르 왕국의 멸망과 더불어 400년 동안 밀림 속에 묻혀 있었다. 이 앙코르 유적지는 16세기 이후 일부 탐험가나 선교사들에 의해 발견됐지만, 처음에 유럽인들은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스의 신전이나 로마의 콜로세움 같은 거대한 유적지가 어떻게 동남아에 있을 수 있느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앙코르 왓이 서구에 정식으로 소개된 1850년 에밀 부유보와 1860년 앙리무어의 프랑스 박물학자 앙리 무어 책이 나온 뒤에야 앙코르 왕국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앙코르 유적지는 신이 만들어놓은 퍼즐이다. 다 쓰러진 사원 귀퉁이에 앉아서 멍하니 조각상을 보고 있거나 꼼꼼하게 자료집을 읽으며 해답을 찾으려 해도 문외한에겐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나는 앙코르 와트가 주는 감동을 한 아름 안은 채 베트남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했다. 어느 한국인 배낭여행객 중에 한 사람이 이곳 앙코르 와트에 여행을 왔다가 앙코르 유적에 매료되어 다시 시엠립에 와서 앙코르 와트 여행가이드로 나섰다고 한다. 능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가 내게 ‘유적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말할 것이다.  어느 여행가가 말했듯이 나 역시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친구여 앙코르로 가라. 앙코르의 유적과 앙코르의 꿈이 있는 곳으로…’



* 앙코르 톰의 정중앙에 위치한 바이욘 사원(Bayon temple)의 큰 바위얼굴, 야바르만 7세가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출처 :  졸저 <아름다운 동행>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