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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하늘만 곱구나 / 이용악

by 혜강(惠江) 2020. 8. 14.

 

 

 

 

하늘만 곱구나

 

 

- 이용악

 

 

 

  집도 많은 집도 많은 남대문턱 움 속에서 두 손 오구려 혹혹 입김 불며 이따금씩 쳐다보는 하늘이사 아마 하늘이기 혼자만 곱구나

 

  거북네는 만주서 왔단다 두터운 얼음장과 거센 바람 속을 세월은 흘러 거북이는 만주서 나고 할배는 만주에 묻히고 세월이 무심찮아 봄을 본다고 쫓겨서 울면서 가던 길 돌아왔단다

 

  띠팡*을 떠날 때 강을 건널 때 조선으로 돌아가면 빼앗겼던 땅에서 농사지으며 가 갸 거 겨 배운다더니 조선으로 돌아와도 집도 고향도 없고

 

  거북이는 배추 꼬리를 씹으며 달디달구나 배추 꼬리를 씹으며 꺼무테테한 아배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배추 꼬리를 씹으며 거북이는 무엇을 생각하누

 

  첫눈 이미 내리고 이윽고 새해가 온다는데 집도 많은 집도 많은 남대문턱 움 속에서 이따금씩 쳐다보는 하늘이사 아마 하늘이기 혼자만 곱구나

 

 

- 시집 《개벽》(1948) 수록

 

 

◎시어 풀이

 

*피땅 : ‘장소’의 중국말. 여기서는 ‘만주를 가리킴.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유랑을 끝내고 서울로 귀향했으나 삶의 터전을 찾을 수 없는 유이민(流移民)의 고달픈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작품에 드러나지 않으나, 귀환한 거북네를 지켜보며, 거북네의 안타까운 사연을 객관적 태도로 전하여 사실성을 확보하고 있다.

 

  5연으로 된 이 시는 구성에 있어서 특이한 면을 보이고 있다. 1. 3, 5연은 거북이가 말하는 형식으로, 2, 4연은 화자가 거북네의 사정을 들어주는 형식으로 주관과 객관의 결합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거북네‘의 삶이 ’고운 하늘‘과의 대비를 통해 비참한 실상을 부각하고 있다.

 

  1연에서 거북이로 추정되는 화자는 남대문턱의 움막 속에서 추위에 떨며 이따금 올려다보는 하늘이야 하늘이기 때문에 저 혼자 곱다고 느낀다. 그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움막과 대비되면서 고운 하늘과 누추하고 힘겨운 삶이 대비를 보인다. ‘움 속에서 두 손 오구려 혹혹 입김 불며’는 그만큼 고통스러운 삶을 드러낸다.

 

  2연에서 그렇게 살고 있는 거북네의 이력이 제시된다. 그들은 만주서 ‘두터운 얼음장과 거센 바람 속’ 같은 세월을 살다 귀향한 유이민이다. 할아버지는 만주서 죽고, 그리고 거북이는 태어나고 무심한 세월을 만주서 보내다 광복의 소식을 듣고 예전에 울면서 쫓겨가던 그 길로 다시 돌아왔다.

 

  3연에 와서는 희망이 없는 거북네의 고통스러운 삶이 푸념처럼 들려온다. 만주 땅을 떠나서 조국에 돌아가면 빼앗겼던 땅을 찾아 농사도 짓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으나 희망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4연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누군가 내 버렸을 배추 꼬리를 씹으며, 평생을 노동에 전 아버지의 검은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거북이의 삶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것은 덩시 귀환 동포들의 삶의 모습인 것이다.

 

  마지막 연은 첫 연을 변형 반복하면서 거북네는 계속되는 고통스러운 삶을 드러내고 있다. 첫눈도 내리고 벌써 새해가 된다는데, 남대문턱 움막 속에 엎드려 이따금 올려다보는 하늘은 무심히도 혼자만 곱다는 것이다.

 

  이 시에서 ‘남대문턱 움, 두터운 얼음장, 거센 비람 속, 배추 꼬리’라는 시어들은 모두 유아민인 거북네의 힘들고 어려운 삶을 연상시키는 시어들로 이 시어들은 ‘고운 하늘’과 대비되어 ‘하늘만 곱구나’라는 표현을 통하여, 하늘은 곱고 조국의 상황은 여전히 비참함을 보여 줌으로써 삶의 터전을 찾을 수 없어 고통을 받고 있는 유아민의 고달픈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당대의 많은 시가 목소리 높은 주장과 흥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시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작자 이용악(李庸岳, 1914~1971)

 

 

  시인. 함북 경성 출생.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5년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한 후 6·25 때 월북. 그는 일제 강점기에 만주 등지로 떠돌며 살아야 했던 민족의 비극적 현실을 시로 형상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시집으로는 《분수령》(1937), 《낡은 집》(1938), 《오랑캐꽃》(1947) 등이 있다. 1949년 현대시인 전집의 제1집으로 〈이용악집〉이 나왔다. 월북 후, 남한에 《이용악 시전집》(1988), 《북쪽은 고향》〉(1989),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1989) 등이 출간되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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