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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오랑캐꽃 / 이용악

by 혜강(惠江) 2020. 8. 14.

 

 

 

 

오랑캐꽃

 

 

  - 이용악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채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인문평론》(1939. 10) 수록

 

 

◎시어 풀이

 

 

*도래샘 : 도랑가에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 ‘도래'는 '도랑'의 함경북도 방언.

*띳집 : 지붕을 띠로 인 집. 모옥(茅屋).
*오랑캐 : 북방 민족의 하나인 여진족,

*오랑캐꽃 : 제비꽃, 병아리꽃, 씨름꽃, 봉기풀(함경도), 장수꽃(강원도) 등의 이칭)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일제 치하에 자기 땅에서 쫓겨나 이국땅으로 떠도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 삶과 슬픔을 연약한 오랑캐꽃을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1939년 10월 《인문평론》 창간호에 실렸다가, 약간의 수정을 거쳐 해방 이후 1947년 4월에 간행된 세 번째 시집 《오랑캐꽃》의 표제 시로 수록되었다. 최초 발표 시에 오랑캐꽃에 대한 설명에 해당하는 서사(序詞)가 작품 뒤에 붙어 있었는데, 시집 수록 시에는 제목 아래로 옮겨져 있다.

 

  ‘-긴 세월을 오랑캐와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라는 서사는 흔히 시의 본문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비유적으로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서사는 시의 내용을 혼동하게 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 것처럼 보인다. 이 시에서 ‘오랑캐꽃’은 ‘오랑캐’가 아닌 우리 민족을 의미한다. 시인이 이 서사를 넣은 이유는 아마 일제의 눈을 의식해서 의미에 혼란을 가져오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따라서 이 시에서 ‘오랑캐꽃’은 일제에 의해 지배당하는 우리나라의 비극적 현실을 대변하는 객관적 상관물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의 상황이 옛날 고려 군사에게 쫓겨난 오랑캐와 비슷한 처지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이 시는 ‘오랑캐꽃’을 의인화하여 표현하였는데, ‘오랑캐꽃’은 우리 민족과 동일시되어 있다. 서정적인 독백 형식에 서사적인 표출 방식을 혼용하였다. 1연은 오랑캐가 고려 군사에게 쫓겨 삶의 터전인 ‘도래샘, 띳집’도 버리고 간 역사적 사실을 ‘~단다’라는 어미를 사용하여 객관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2연은 그 후 덧없이 세월이 흘러갔음을 진술한다. 2연은 1연에서 보여준 쫓는 자의 입장으로서의 ‘고려 장군님’이 3연으로 이어지면서 쫓기는 자로서의 우리 민족으로 역전의 관계를 실현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몇백 년의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 역사는 반전될 수도 있다는 역사 인식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3연에서는 시간을 건너뛰어 현재의 ‘오랑캐꽃’에 대한 연민과 슬픔을 드러내고 있다.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이라며, 화자는 오랑캐꽃을 ‘너’라고 부름으로써 오랑캐꽃에 감정을 이입하여 정서적으로 교감하면서, 오랑캐와는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오직 머리 모양과 닮았다는 외형적 유사성 때문에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꽃에 대하여 연민의 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이라며. 오랑캐꽃과 우리 민족을 동일시(同一視)하여 일제에 의해 천대받는 억울함과 비통함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1, 2연과 3연 사이의 의미적 틈을 통해 시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과거에 우리 땅에서 쫓겨난 오랑캐와 현재 오랑캐꽃에 대한 화자의 연민은 ‘오랑캐’라는 기호를 통해 동질성을 획득한다. 그것은 과거 고려 군사에 의해 쫓겨난 오랑캐처럼 일제하의 우리 민족도 가혹한 탄압과 착취로 우리 땅에서 쫓겨나 이리저리 유랑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 시가 민족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음에도 당당히 《인문평론》에 발표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우회적인 표현 방법에 직결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화자는 오랑캐꽃에 대해 무한한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약하고 가냘픈 이미지의 꽃을 통하여 일제 강점기에 오랑캐 아닌 오랑캐 처지가 되어 강 건너로 쫓겨나야 했던 우리 민족의 슬픔을 그려낸 것이다. 고도의 상징성을 통해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의 유이민 상황을 압축적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작자 이용악(李庸岳, 1914~1971)

 

 

  시인. 함북 경성 출생.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5년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한 후 6·25 때 월북. 그는 일제 강점기에 만주 등지로 떠돌며 살아야 했던 민족의 비극적 현실을 시로 형상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시집으로는 《분수령》(1937), 《낡은 집》(1938), 《오랑캐꽃》(1947) 등이 있다. 1949년 현대시인 전집의 제1집으로 〈이용악집〉이 나왔다. 월북 후, 남한에 《이용악 시전집》(1988), 《북쪽은 고향》〉(1989),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1989) 등이 출간되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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