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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교목(喬木) / 이육사

by 혜강(惠江) 2020. 8. 15.

 

 

 

교목(喬木)

 

 

- 이육사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하리.

 

 

- 《인문 평론》(1940) 수록

 

 

◎시어 풀이

 

*교목(喬木) : 줄기가 곧고 굵으며 8m 이상 높이 자라고 위쪽에서 가지가 퍼지는 나무. 소나무·향나무 따위의 큰키나무. ‘관목(灌木)’의 상대어.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줄기가 곧고 높이 자라는 나무를 의미하는 ‘교목’을 통해 고통스런 시련 속에서도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화자의 강인한 신념과 의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교목은 오랜 세월 동안 고통과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뚝 서서 꿋꿋하게 기상을 자랑하는 존재로, 일제 강점하의 혹독한 시대 상황 속에서 굴하지 않는 강인한 신념과 의지로 맞서 싸웠던 육사의 치열한 삶의 자세를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처럼 자연물인 ‘교목’을 통해 회지 자신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상징성이 강한 시어와 시구, 남성적인 어조를 사용하여 주제를 드러내고 있으며, ‘푸른 하늘’의 이상 세계와 대비되는 ‘낡은 거미집’, ‘검은 그림자’ 등 부정적 시구를 롱해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차라리’, ‘아예’, ‘차마’ 등의 부사와 명령·부정형 종결 어미 ‘말아라’, ‘아니리’, ‘못해라’ 등을 사용하여 화자의 단호한 의지를 강조하여 강한 저항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3연 9행으로 된 짤막한 이 시는 1연에서 굽힐 수 없는 신념과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타고 우뚝 남어 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라고 한다. 여기서 ‘푸른 하늘’은 이상과 동경의 세계이다. 그 세계를 지향하는 화자는 ‘세월에 불탄’ 부정적 현실에서 우뚝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라고 진술한다. 이것은 화자가 기다리는 ‘봄’이 오지 않는 한 꽃이 주는 즐거움도 찾지 않겠다는 것으로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화자의 굳은 신념과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2연은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이 아니리’에서 ‘낡은 거미집’은 화자의 현재의 모습이 투영된 구절이며, ‘끝없는 꿈길’은 1연의 ‘푸른 하늘’과 상통하는 지향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화자는 ‘낡은 거미집’을 휘두르고 있는 현실에서 이상 세계를 향하는 존재로서 어떤 안락함이나 세속적 영예 등에 휩쓸리는 일이 없이 기꺼이 받아 들이며, 가혹한 시대에 맞서 싸우면서 후회 없이 살겠다는 화자의 의지를 암시하고 있다.

 

  3연에서는 죽음마저 불사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드러내고 있다.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라는 표현은 의연한 결의, 가장 강인한 정신의 높이에 도달한 화자의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바람’은 굳고 곧은 나무를 흔들고 굽히려는 외부적 힘으로, 화자의 의지를 꺾으려는 어떤 유혹이나 시련을 가리킨다. 화자는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하리라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으므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극단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호수 속 깊이 거꾸러’지듯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올곧은 신념만은 지키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보이고 있다.

 

  이 시는 일제 강점기 후반 1940년 《인문평론》 7월호에 발표된 이육사의 작품이다. 초기 시들은 다소 관념과 추상에 빠져 시적 깊이를 얻지 못한 데 반해, <절정>, <교목>, <광야>, <꽃> 등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후기 시들은 절제된 시어로 일제의 군국주의에 맞서는 강인한 저항 정신을 유감없이 표출한다. 그의 시는 웅장하고 활달한 상상력과 남성적이고 지사적인 절조와 품격을 보여 준다. <절정>에 나오는 ‘매운 계절의 채찍’이나 ‘서릿발 칼날진’ 같은 시구는 식민지 지식인이 당면한 현실의 가혹함을 말해준다. 이처럼 암담하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시인은 자신의 영혼과 의지를 더욱 가다듬어 ‘강철로 된 무지개’를 꿈꾸는 선비의 꼿꼿한 정신적 결기를 보여 준다.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는 표현 속에서 섣부른 희망을 갖지 않으려는 단단한 마음가짐을 볼 수 있고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라는 표현 속에서는 현실을 견디는 결연한 방법을 읽을 수 있다. 희망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현실을 굳건하게 견디어 내려는 결연한 자세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의 시가 아우르는 정신의 드높은 경지와 지사다운 절조는 그의 이름 앞에 붙는 ‘민족 시인’, ‘저항 시인’이라는 호칭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입증한다. 그는 드물게 문학과 삶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한 사람이다. 일제 말기에 이 땅의 문인들은 대거 친일 대열에 끼여 제 잇속과 영달을 챙기는 데 급급하며 누추함과 비굴함으로 얼룩진 훼절의 삶을 살았다. 이에 비해 고결한 정신과 올곧은 신념을 고스란히 행동으로 옮긴 이육사의 깨끗한 삶은 그가 남긴 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작자 이육사(李陸史, 1904~1944)

 

 

  시인 · 독립운동가. 경북 안동 출생. 본명은 원록(源綠). 육사라는 이름은 형무소 수인 번호 264에서 따온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추고 있던 이육사는 생애 후반에는 총칼 대신 문학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애국지사였다. 여러 차례 검거 구금되었고, 1944년 1월 16일 40의 나이로 이국 땅 베이징의 감옥에서 순국했다.

 

  1933년 <황혼>로 등단하여 1937년 《오선》 동인으로 잠시 활약했다. 상징적이면서도 서정이 풍부한 시풍으로 일제 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저항 의지를 노래하였다. 웅장하고 활달한 상상력과 남성적이고 지사적인 절조와 품격을 보여주었다. 대표작으로 <절정>, <광야>, <꽃>, <청포도> 등이 있으며, 그의 사후에 출판된 유고 시집 《육사 시집》(1946)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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