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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자야곡(子夜曲) / 이육사

by 혜강(惠江) 2020. 8. 15.

 

 

 

 

자야곡(子夜曲)

 

 

- 이육사

 

 

 

수만 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슬픔도 자랑도 집어삼키는 검은 꿈
파이프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론데

연기는 돛대처럼 내려 항구에 들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저려

바람 불고 눈보라 치잖으면 못 살리라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 소리

숨 막힐 마음속에 어디 강물이 흐르느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맘에 드리느라

수만 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리라

 

 

- 《문장》(1941. 4) 수록

 

 

►시어 풀이

 

수만 호(水曼胡) : 빛이 아름답고 광택이 나는 석영의 하나. ‘석영’은 광석.

 

 

▲이해와 감상

 

 

  ‘자야(子夜)’는 밤 11시부터 새벽 1까지의 한밤중을 가리키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화자인 ‘나’는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담배를 피워문 채 고향 상실의 비애를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화자가 바라는 고향(당위적인 고향)과 현실의 고향을 대비하여 고향 상실로 인한 비애를 강조하고 있으며, 상황의 역설적 표현을 통하여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고, 설의적 표현을 통해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고, 영탄적 종결어미 ‘~리라’를 반복 사용하여 운율감을 형성하고, 구성면에서는 수미 상관의 기법을 활용하여 형태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

 

  1연에서는 고향에 대한 기대와 대비되는 현재 고향의 모습을 보여준다. ‘수만호 빛이라야 할 내 고향’은 화자가 바라는 고향의 이미지(밝음, 빛, 풍요)의 모습이어야 하는데, 현재의 고향의 모습은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른’ 모습으로 어둠, 절망, 죽음의 심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여기서 ‘노랑나비’는 긍정적 대상이며, ‘무덤’은 절망의 공간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은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없는 절망적인 땅이다. 화자는 이 절망적 상황을 ‘이끼만 푸르리라’의 영탄적 표현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2, 3연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 상실로 인한 슬픔을 드러내고 있다.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은 ‘슬픔도 자랑도 집어삼키는 검은 꿈’의 절망의 상황이지만, 향기로운 ‘꽃불’과 항구에 찾아드는 ‘연기’로 하여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잠기게 된다. 여기서 ‘꽃불’과 ‘연기’는 화자에게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념의 매개체 구실을 한다. 그러나 화자의 눈에는 고향 상실과 그리움으로 ‘짜운 소금’ 같은 눈물만 흐를 뿐이다.

 

  4, 5연에서 화자는 고향을 잃은 상실감과 절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바람 불고 눈보라 치잖으면 못 살리라’라는 시구는 화자가 처한 현실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와 같은 표현은 차라리 고향을 상실한 자의 절규인 것이다.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 소리’ 역시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절망적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며, ‘숨 막힐 마음속에 어데 강물이 흐르느뇨’라는 설의적 표현은 ‘차디찬 강’과 함께 고향을 잃고 떠도는 표랑(漂浪)의 이미지로서, 절망감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유랑을 선택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4연은 수미쌍관의 기법으로 고향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과거의 모습과는 달리 피폐해진 고향을 보고 느끼는 절망감을 표현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고향을 잃은 이의 한이 표출되어 있다. 화자는 ‘수만 호 빛이리야 할’ 고향이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른 모습으로 변한 것에 절망하고 있다.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밤의 항구에서 담배를 피우며 삭막해져 가는 고향을 바라보면서 슬퍼하거나 매운 술로 마음을 달래는 것뿐이다. 그 어떤 희망이나 의지도 없다. 그냥 현실에 슬퍼하고 절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그의 다른 작품 <절정>, <광야> 등에서 보이듯, 암울한 역사 현장 속으로 달려 나가는 적극적 저항 의지의 전 단계로 볼 수 있다.

 

 

▲작자 이육사(李陸史, 1904~1944)

 

 

  시인 · 독립운동가. 경북 안동 출생. 본명은 원록(源綠). 육사라는 이름은 형무소 수인 번호 264에서 따온 것. 일제 강점기에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추고 있던 이육사는 생애 후반에는 총칼 대신 문학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애국지사였다. 수십 차례 검거 구금되었고, 1944년 1월 16일 40의 나이로 이국 땅 베이징의 감옥에서 순국했다.

 

  1933년 <황혼>로 등단하여 1937년 《오선》 동인으로 잠시 활약했다. 상징적이면서도 서정이 풍부한 시풍으로 일제 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저항 의지를 노래하였다. 웅장하고 활달한 상상력과 남성적이고 지사적인 절조와 품격을 보여주었다. 대표작으로 <절정>, <광야>, <꽃>, <청포도> 등이 있으며, 그의 사후에 출판된 유고 시집 《육사 시집》(1946)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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