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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바다의 마음 / 이육사

by 혜강(惠江) 2020. 8. 16.

 

 

바다의 마음

 

- 이육사

 

물새 발톱은 바다를 할퀴고
바다는 바람에 입김을 분다.
여기 바다의 은총(恩寵)*이 잠자고 있다.

흰 돛(白帆)은 바다를 칼질하고
바다는 하늘을 간질여 본다.
여기 바다의 아량(雅量)*이 간직여 있다.

물은 바다를 얽고
바다는 대륙(大陸)을 푸른 보*로 싼다.
여기 바다의 음모(陰謀)*가 서리어 있다.

 

- 시집 《이육사전집》(2004) 수록

 

►시어 풀이

*은총(恩寵) : ① 높은 사람에게서 받는 특별한 은혜와 사랑. ②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

*아량(雅量) : 속이 깊으면서 너그러운 마음씨.

*보(褓) : 물건을 싸거나 씌워 덮기 위해 네모지게 만든 천.

*음모(陰謀) : 좋지 못한 일을 몰래 꾸밈. 또는 그런 꾀. 음계(陰計).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중국을 거쳐 만주까지 헤매며 독립운동을 했던 이육사 시인이 대륙을 오고 간 바다를 생각하며, 인간의 어떤 힘으로도 손상되지 않는 바다의 생명력, 포용력, 광대함에 대해 예찬하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거대한 바다에 압도되어 그 은총과 아량, 그리고 바다의 음모에 경탄하고 있다.

  3행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바다를 의인화하고, 바다의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바다’와 ‘바다 위 존재’들의 행위를 대조시키고 있으며, 매 연에서 ‘ㄴ다’와 ‘있다’를 활용한 유사한 통사 구조가 반복되어 운율감을 살리고 있다.

  1연에서는 상처를 가한 존재를 감싸는 바다의 은총을 노래하고 있다. ‘물새 발시구에서 ‘물새 발톱’은 바다에 일시적으로 위해(危害)를 가하는 존재인데, 바다는 그에 대응하여 ‘바람에 입김을 분다’고 한다. 이것은 따뜻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말이다. 화자는 그것을 ‘바다의 은총’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바다는 물새를 비롯한 생명력을 품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2연 역시 통사 구조가 유사한데, 여기서는 무력을 가진 존재마저 감싸는 바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흰 돛은 바다를 칼질하는 해를 끼치지만, 바다는 그에 대응하여 ‘바다를 간질여 본다’. 이것은 출렁이는 파도에 비친 하늘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화자는 이것을 ‘바다의 아량’으로 바라보고 있다. 무력을 휘두르는 행위를 감싸는 너그러운 바다를 형상화한 것이다.

  3연은 대륙을 감싸고 있는 바다의 음모를 노래하고 있다. ‘낡은 그물은 바다를 얽고/ 바다는 대륙을 푸른 보로 싼다’에서는 바다에 위해를 가하는 존재를 ‘낡은 그물’에 비유하고, 그에 대응하여 바다는 대륙을 ‘푸른 보’로 싸듯이 바다는 모든 것을 품어 안는 넓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것을 화자는 ‘바다의 음모’가 서린 것으로 인식한다. 여기서 말하는 ‘음모’란 음흉한 흉계를 꾸민다는 의미가 아니다. 바다에 가해지는 각종 위해(危害)를 감싸 안으며, 생명 있는 것들을 품고 있는 바다의 넓은 마음, 그 마음의 이면에 존재하는 강한 힘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는 결국, 인간의 힘이 ‘할퀴는 물새 발톱’, ‘칼질하는 흰돛’, ‘바다를 얽는 낡은 그물’로 위해를 가한다 해도, 바다는 그에 대응하여 ‘입김을 불고’, ‘간질여 보고’, ‘푸른 보로 싼다’고 하여, 바다의 ‘은총’, ‘아량’, ‘음모’를 노래하고 있다.

  서해를 통해 수없이 중국을 거쳐 만주까지 헤매며 정의부(正義府)‧군정부(軍政府)‧의열단(義烈團) 등 여러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여 독립투쟁을 벌였던 시인은 항해를 도와준 바다에 대한 은총과 아량과 너그럽고 깊은 바다의 마음을 생각하고 많은 난관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해준 바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이 시 <바다의 마음>은 1946년에 발행된 《육사시집》이 발간된 후에 발견되어 이육사 탄신 100주년기념하여 발간된 《이육사전집》(2004)에 수록되어 있다. 이 전집은 이육사가 생전에 써서 남긴 작품들을 총망라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친필 원고가 이육사의 형 이원기의 자손이 소유하고 있다가 문화재청에 기증했는데, 문학사적 중요성과 희귀성이 인정되어 2019년 12월 등록문화재 제738호로 지정되었다.

 

▲작자 이육사(李陸史, 1904~1944)

  시인 · 독립운동가. 경북 안동 출생. 본명은 원록(源綠). 육사라는 이름은 형무소 수인 번호 264에서 따온 것. 일제 강점기에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추고 있던 이육사는 생애 후반에는 총칼 대신 문학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애국지사였다. 수십 차례 검거 구금되었고, 1944년 1월 16일 40의 나이로 이국 땅 베이징의 감옥에서 순국했다.

  1933년 <황혼>로 등단하여 1937년 《오선》 동인으로 잠시 활약했다. 상징적이면서도 서정이 풍부한 시풍으로 일제 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저항 의지를 노래하였다. 웅장하고 활달한 상상력과 남성적이고 지사적인 절조와 품격을 보여주었다. 대표작으로 <절정>, <광야>, <꽃>, <청포도> 등이 있다.

  그의 사후에 출판된 1946년에 유고 시집 《육사 시집》(1946)이 나왔다. 이 《육사시집》은 그 후 1956년 재간본(再刊本)이 나왔고, 1964년에는 《청포도》라는 이름으로 재중간(再重刊), 1971년에는 작품 연보에서 밝히지 못한 연대를 밝혀내고, 종전 시집에 수록되지 않았던 작품을 추가하여 《광야》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발간되었다. 그후 《이육사전집》(2004), 《이육사시집》(2016), 《바다의 마음》(2018) 등이 발간되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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