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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절규(絶叫) / 이장욱

by 혜강(惠江) 2020. 8. 17.

 

 

 

절규(絶叫)

 

 

- 이장욱

 

 

모든 것은 등 뒤에 있다.

 

몇 개의 그림자, 그리고

거리의 나무들은 침묵을 지키거나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만 몸을 떨었다.
곧 네거리에 서 있는 거대한 주유소를 지나야
할 테지만 나는 아무래도 기나긴 페이브먼트*,
이 낯선 거리의 새벽 공기가 다만 불안하였다.
천천히 붉은 구름이 하늘을 흐르기 시작했으며
흐릿한 전화 부스에는 이미 술 취한 사내들
어디론가 가망 없는 통화를 날리며 한량없었으므로
나는 길 끝에 눈을 둔 채 오 분 후의 세계를
다만 생각할 수 있을 뿐, 어느 단단한 담 안쪽
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믿을 수 없는 고음역*의
레퀴엠* 등 뒤를 따라오는 몇 개의 어두운
그림자, 쉽게 부러지는 이 거리의
난간들, 나는 온 힘을 다해 아주 오래된 멜로디를
떠올렸으나 네거리의 저 거대한 주유소,
그리고 붉은 불빛의 편의점 앞에서
결국 뒤돌아보게 되리라, 결국 뒤돌아
보는 그 순간 나는 어떤 눈빛을 지니게 될는지
두 손으로 두 귀를 막고 어떻게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는지
다만 몇 개의 그림자, 그리고

 

등 뒤의 세계.

 

 

- 시집 《내 잠 속의 모래 산》(2002) 수록

 

 

►시어 풀이

 

*페이브먼트(pavement) : 포장한 차로나 인도나 보도.

*고음역(高音域) : 사람의 목소리나 악기가 낼 수 있는 높은 음의 넓이.
*레퀴엠(requiem) : 위령곡.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절규(絶叫)>

  

표현주의 작기 뭉크의 1893년의 작품. 뭉크의 작품 중 가장 표현성이 강하며,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유령 같은 모습의 한 남성이 전율하며 양손을 얼굴에 대고 화면의 아래쪽에 위치하여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해골 같은 얼굴에는 공포에 찬 절규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흘러나올 듯하다. 배경 화면의 구성을 대담하게 사선으로 처리하였으며, 얼굴선의 동적인 처리와 빨강·노랑·파랑의 삼원색에 맞추어진 배색 등으로 형식적인 면에서 더욱 강렬한 효과를 나타낸다. 붉은 구름은 마치 불타고 있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화면 효과를 나타내며 절망적인 심리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세계적인 미술 작품인 뭉크의 ‘절규’를 보고 영감을 받아 원작의 그림에 나타난 불안과 공포를 현대 사회적 맥락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염세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이 시는 현대 도시 사회의 불안과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문학이 미술이라는 인접 영역의 예술과 밀접한 영향 관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뭉크의 '절규'에 표현된 당시 사회의 불안과 공포는 시인과 시적 화자가 생활하는 현대 도시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현대 도시 사회의 문명을 새롭게 제시하면서도, 그러한 세계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이미지를 원작과 같이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미술 작품을 시작(詩作)의 모티프로 삼고, 원작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있는 이 시는 의도적인 행간 걸침이 두드러진 것이 특징이다. 즉, 하나의 대상을 제시하면서 수식어와 피수식어를 다른 행에 배치하고, 피수식어로 시작된 새로운 행은 쉼표와 함께 또 다른 대상의 수식어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 기교는 드러내려는 대상의 속성을 이전 행의 끝에 제시하여 휴지를 줌으로써 대상의 속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대상 자체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준다. 또 회화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을 활용하여 시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시상을 전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모두 3연 27행으로 된 시는 형식상 1연과 3연은 한 행으로 간단하게 두고, 2연에서 화자가 느끼는 두려움의 정서를 서술하고 있다. 1연은 시적 화자의 두려움을 ‘모든 것은 등 뒤에 있다’라는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등 뒤’에 있다는 사실은 등 뒤에 두려운 현실이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2연에서는 현대 도시 사회의 모습과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고요하면서도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나는 아무래도 기나긴 페이브먼트/ 이 낯선 거리의 새벽 공기가 다만 불안하였다’고 한다. 이 시에서는 현대 도시 사회의 불안과 공포라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현대 도시 문명을 상징하는 요소들을 여러 가지 제시한다. 예컨대 ‘주유소, 페이브먼트, 전화 부스’ 등이 현대 도시 사회를 나타내는 소재로 등장하고, ‘새벽 공기가 다만 불안하였다’는 ‘불안’을, ‘붉은 구름이~흐르기 시작했으며’에서는 ‘공포’를, ‘가망 없는 통화’나 ‘단단한 담 안쪽’ 등은 ‘절망’을, ‘고음역의 레퀴엠, 소리 없는 비명’ 등은 ‘불안과 공포’를 ‘어두운 그림자’는 ‘어둠’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감각적이고 과장된 표현을 통해 현대 도시 문명의 불안과 공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리의 나무들’(생명력을 잃은 삭막), ‘주유소, 페이브먼트’(낯설고 불안함), ‘붉은 구름, 붉은 불빛의 편의점’(핏빛 이미지로 뒤덮인 불안과 공포), ‘흐릿한 전화부스, 술 취한 사내, 가망 없는 통화’(혼탁한 사회와 희망의 부재), ‘고음의 레퀴엠’(날카로운 죽음의 이미지) 등의 표현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표현은 현대 도시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 ‘그리고 붉은 불빛의 편의점 앞에서 / 결국 뒤돌아보게 되리라, 결국 뒤돌아 / 보는 그 순간 나는 어떤 눈빛을 지니게 될는지 / 두 손으로 두 귀를 막고 어떻게 /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는지’라고 진술한다. 이미 화자의 뒤에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공포에 떨게 하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뒤돌아 보는 행위는 더큰 공포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또한, 소리조차 지를 수 없는 공포에 가득한 눈빛으로 변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소리 없는 비명’은 시적 화자의 불안과 공포를 역설적으로 강조한 말로서 뭉크의 ‘절규’의 이이지와 부합하는 것이며, 그래서 이 시가 ‘뭉크’의 그림을 모티브로 한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3연의 화자의 ‘등 뒤의 세계’는 이미 시적 화자가 지나온 세계이며, 화자는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불안과 공포로 인해 뒤돌아서서 그것을 확인하는 것조차 두려운 상황이다.

 

  결국, 이 시는 뭉크의 ' 절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서, 화자는 두 손으로 두 귀를 막으며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이미 그러한 불안과 두려움은 단순히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의식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화자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으며, 그것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 사회가 주는 불안과 공포를 다룬 시로써 대표적인 작품은 이 작품 외에도 이상의 <오감도>가 있다. <오감도>는 전에 없이 파격적인 형식과 표현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했다면, 이 시는 표현과 형식 자체는 기존의 시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인접한 예술 영역에서 시작의 모티프를 얻었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작자 이장욱(李章旭, 1968~ )

 

 

  시인이며 소설가.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 시 부문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전통적인 서정시의 외형을 허물고 재래의 익숙한 서정과 정형화된 시의 문법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서정의 세계를 구축해냄으로써 2000년대 미래파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발휘하고 있다.

 

  시집으로 《내 잠 속의 모래산》(2002), 《정오의 희망곡》(2006), 《생년월일》(2011),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2016)이 있다. 소설집으로 《고백의 제왕》(2010),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2005), 《천국보다 낯선》( 2013) 등이 있고, 평론집 《혁명과 모더니즘》(2005)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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