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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봄은 고양이로다 / 이장희

by 혜강(惠江) 2020. 8. 17.

 

 

 

 

봄은 고양이로다

 

 

-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금성》(1924)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고양이에 대한 섬세하면서도 치밀한 관찰과 분석에서 오는 연상 작용을 통해, 봄이 주는 느낌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꽃과 같은 자연 사물로 표현되던 일반적인 방식과는 달리, 고양이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예리한 분석으로 고양이의 이미지와 봄의 이미지를 시적 감각으로 형상화하여 봄의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4연으로 된 이 시는 1, 2연과 3, 4연이 각각 유사한 통사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음수율도 거의 같다. 그런데 그 이미지는 서로 대조적이다. 1연과 3연은 곱고 부드러운 여성적 어조를 바탕으로 한 정적(靜的) 이미지로 구성된 반면, 2연과 4연은 다소 거칠고 과격한 동적(動的)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연이 ‘~도다’, ‘~아라’ 등의 영탄조 어미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각운이 되어 음악적 효과도 살리고 있다. 또한, 사상보다는 대상의 감각적 표현에 주력하고 있다.

 

고양이와 봄의 유사점을 감각적 연상에 의해 한 가지씩 포착하여 은유를 통해 봄과 고양이를 하나로 만들어 버렸다. 고양이의 이미지와 봄의 이미지의 연관을 보면. 고양이의 특징적 부분인 ‘털’, ‘눈’, ‘입술’, ‘수염’에 각각 봄의 특징적 이미지들을 대입시켜 봄의 ‘향기’, ‘봄의 불길’, ‘봄의 졸음’, ‘봄의 생기’를 통해 봄의 감각을 표현하고 있다.

 

1연에서 시적 화자는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서 고운 봄의 향기를 느끼고, 2연에서는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봄의 불길을 느낀다. 1연이 곱고 부드럽고 정적인 여성적인 이미지라면, 2연은 거칠고 과격하고 역동적인 남성적 이미지의 대조를 보인다. 3연에서 화자는 ‘고요히 다문 고양이의 입술’에서 포근한 봄의 졸음 같은 나른함을 느끼게 되고, 4연에서는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서 푸른 봄의 생기가 뛰노는 역동적인 생동감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여기서도 3연이 고요하고 포근한 정적인 이미지라면, 4연은 날카롭고 생기가 뛰노는 동적인 이미지로서 대조된다.

 

이 시는 1920년대 초기의 작품으로,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시는 당시의 시단이 퇴폐적 낭만주의, 상징주의 등 서구 문예 사조에 온통 휩싸여 있을 때, 퇴폐성이나 감상성에 휘말리지 않고 예리한 감각과 세련된 기교로 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의 시가 보여주는 세련되고 정돈된 형식, 묘사 중심의 감각적 시어의 사용, 다의적인 상징 기법 등은 바로 뒤를 이어 활동한 정지용(鄭芝溶)과 함께 이장희를 한국시사에서 새로운 시적 경지를 개척한 시인으로 평가받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작자 이장희(李章熙, 1900~1929)

 

 

시인. 본명 이장희(李樟熙). 호는 고월(古月). 경북 대구 출생. 1924년 <청천(靑天)의 유방(乳房)>, <실바람 지나간 뒤>를 《금성》에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작품은 많이 남기지 않았으나, 주로 깊은 감성(感性)으로 섬세한 감각과 심미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여 감각적인 예민성을 갖춘 시를 썼다. 대표작으로 <봄은 고양이로다>, <청천(靑天)의 유방(乳房)>, <하일소경(夏日小景)> 등이 있다. 요절하였기에 생전에 출간된 시집은 없으며, 사후 1951년 백기만이 펴낸 《상화와 고월》에 시 11편만 실려 전해지다가 제해만 편 《이장희 전집》(1982)과 김재홍 편 《이장희 전집평전》(1983) 등 두 권의 전집에 유작 20여 편이 모두 실렸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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