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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낙타 / 이한직

by 혜강(惠江) 2020. 8. 18.

 

 

 

 

 

낙타

 

 

- 이한직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선생님이 걸어오신다
회초리를 들고서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늦은 봄 햇살에 등을 지고
낙타는 항시 추억한다
- 옛날에 옛날에 -

 

낙타는 어린 시절, 선생님처럼 늙었다.
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낙타를 본다.

 

내가 여읜 동심의 옛 이야기가
여기 저기
떨어져 있음직한 동물원의 오후.

 

 

  - 《문장》(1939) 수록

 

 

▲이해와 감상

 

 

  '낙타'는 어린 시절 선생님을 회상하게 하는 매개체로, 화자는 화창한 봄날 오후 동물원에서 늙은 낙타를 보며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고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과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다.

 

  5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현재(1연)→과거(2, 3연)→현재(4, 5연)의 시간 순서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직유와 은유 등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화자인 '나'는 1연에서 눈을 감고 상을 시작한다. 2, 3연은 화자가 눈을 감고 생각한 과거의 세계로, 회상 속의 선생님은 ‘회초리’를 든 엄하신 분이셨고, ‘낙타’처럼 늙으셨으며, 항상 추억에 잠기곤 했다. ‘낙타’는 항시 추억한다‘에서 ‘낙타’는 늙은 선생님을 은유한 것이며, ‘- 옛날에 옛날에 - ’라는 시어는 추억에 잠겨 있던 늙은 선생님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4연은 화자는 현재로 돌아온다. 지금까지는 시적 화자가 선생님이었으나 낙타로 바뀐다. 낙타는 옛날의 선생님처럼 늙어서 쓸쓸하게 보인다. 그리고 ‘금잔디 위에서 낙타를 본다’라며, 낙타를 통한 선생님에 대한 회상에 젖는다. 이러한 화상 속에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모습을 담겨 있다. 마지막 5연에서는 쓸쓸한 나날을 보내는 화자도 낙타처럼 동물원에서 잃어버린 동심의 옛이야기를 더듬고 있다. ‘내가 여읜 동심의 옛 이야기가/ 여기 저기/ 떨어져 있음직한 동물원의 오후’라는 표현은 화자 역시 잃어버린 동심을 그리워하며 쓸쓸함을 느끼고 있다.

 

  화자는 동물원의 늙은 낙타를 보며 늙은 선생님을 떠올리고 그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이는 동심의 세계를 잃고 메마른 삶을 사는 화자 자신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선생님=낙타=나’의 동일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는 정지용 시인에 의해 추전을 받아 문단에 나온 그해(1939) 작품으로,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주지적, 감각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고, 대상을 일정한 거리에 두고 객관적으로 형상화하였다. 특히 회상을 내용으로 하여 쓴 시는 일반적으로 쓸쓸함, 외로움, 그리움 등의 감상(感傷)에 빠지기 쉬운데 이 시는 그러한 감정을 지적으로 처리하였다.

 

 

▲작자 이한직(李漢稷 1921-1976)

 

 

  시인. 호 목남(木南). 전북 전주 출생. 1939년 시 <온실>, <기려(羈旅)>, <낙타> 등으로 《문장》지에 정지용(鄭芝溶)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썼으나, 6·25전쟁 후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시를 몇 편 썼다. 1960년 공보부 문정관(文政官)으로 도일, 도쿄에 정착하였다가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주요 작품에 광복 전의 것으로 <온실>, <낙타>, <붕괴>, <범람>, 광복 후의 것으로는 <상아해안(象牙海岸)>, <동양의 산>, <여백에> 등이 있다. 시집으로 《청룡((靑龍)》(1953)이 있고, 죽은 뒤에 《이한직 시집》(1977)이 나왔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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