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채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인문평론》(1939. 10) 수록
◎시어 풀이
*도래샘 : 도랑가에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 ‘도래'는 '도랑'의 함경북도 방언.
*띳집 : 지붕을 띠로 인 집. 모옥(茅屋). *오랑캐 : 북방 민족의 하나인 여진족,
*오랑캐꽃 : 제비꽃, 병아리꽃, 씨름꽃, 봉기풀(함경도), 장수꽃(강원도) 등의 이칭)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일제 치하에 자기 땅에서 쫓겨나 이국땅으로 떠도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 삶과 슬픔을 연약한 오랑캐꽃을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1939년 10월 《인문평론》 창간호에 실렸다가, 약간의 수정을 거쳐 해방 이후 1947년 4월에 간행된 세 번째 시집 《오랑캐꽃》의 표제 시로 수록되었다. 최초 발표 시에 오랑캐꽃에 대한 설명에 해당하는 서사(序詞)가 작품 뒤에 붙어 있었는데, 시집 수록 시에는 제목 아래로 옮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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