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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 이용악

by 혜강(惠江) 2020. 8. 13.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 이용악

 

 

삽살개 짖는 소리

눈보라에 얼어붙은 섣달그믐

밤이

얄궂은* 손을 하도 곱게 흔들길래

술을 마시어 불타는 소원이 이 부두로 왔다.

 

걸어온 길가에 찔레 한 송이 없었대도

나의 아롱범*은

자옥* 자옥을 뉘우칠 줄 모른다.

어깨에 쌓여도 하얀 눈이 무겁지 않고나.

 

철없는 누이 고수머릴랑* 어루만지며

우라지오*의 이야길 캐고 싶던 밤이면

울 어머닌

 

서투른 마우재 말*도 들려 주셨지.

졸음졸음 귀 밝히는 누이 잠들 때꺼정*

등불이 깜빡 저절로 눈감을 때꺼정

 

다시 내게로 헤여 드는*

어머니의 입김이 무지개처럼 어질다.*

 

나는 그 모두를 살뜰히* 담았으니

어린 기억의 새야 귀성스럽다.*

기다리지 말고 마음의 은줄에 작은 날개를 털라.

 

드나드는 배 하나 없는 지금

부두에 호젓* 선 나는 멧비둘기 아니건만

날고 싶어 날고 싶어.

머리에 어슴푸레 그리어진 그 곳

우라지오의 바다는 얼음이 두껍다.

 

등대와 나와

서로 속삭일 수 없는 생각에 잠기고

밤은 얄팍한 꿈을 끝없이 꾀인다.

가도오도 못할 우라지오.

 

 

- 시집 《분수령》 (1937)

 

 

◎시어 풀이

 

*우라지오 :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얄궂은 : 성질이 괴상한, 야릇하고 짓궂은
*아롱범 : 표범(함경도 방언)

*자옥 : '자국'의 방언(함경도). 지나가거나 닿아서 생긴 자리

*고수머리 : 곱슬머리.

*마우재 말 : 러시아 말

*때꺼정 : 때까지(함경도 방언)

*헤여 드는 : 헤치고 들어오는.

*어질다 : 마음이 너그럽고 슬기로워 덕행이 높다.
*살뜰히 : 규모가 있고 알뜰하게
*귀성스럽다 : 수수하면서도 마음을 끄는 맛이 있다.
*호젓 : 아주 고요하고 쓸쓸하게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고향을 떠나 이국 땅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화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시로, ‘우라지오’ 가까운 부두에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고향을 떠나 이국 땅을 떠돌던 화자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향수의 노래'로, 시상 전개는 ‘현재(1,2연)→ 과거(3~4연)→현재(5~8연)’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화자의 과거와 현재의 삶이 대립적으로 드러나 있다. 과거의 삶은 화자의 꿈 많던 유년 시절을 나타내고 있으며, 현재의 삶은 절망감에 빠진 성인으로서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화자는 어린 시절에 동경했던 ‘우라지오’의 그 항구에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절망감을 인식하고 있다.

 

  특히, 이 시는 함경북도 지방의 토속어를 많이 사용하였다. 그는 ‘고향’의 이미지를 강조한다거나 가난한 민중들의 삶, 특히 유리되어 표표히 유랑의 길을 떠도는 식민지 백성의 간고한 삶에 대한 애정을 형상화하기 위해 방언을 적극적으로 구사하였다.

 

  화자는 어린 시절 누이와 함께 어머니로부터 ‘우라지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은 어린 시절 화자가 꿈꾸었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곳에 와 있는 화자는 ‘눈보라에 얼어붙은 섣달그믐 밤’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의 부두로 나왔다. 그러나 어른으로 성장한 화자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절망적이다. 화자는 걸어온 길가에는 ‘찔레 한 송이’와 같은, 삶의 작은 보람이나 소박한 행복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화자는 냉혹한 현실에 맛서 ‘아롱범’처럼 치열하게 살아온 삶에 후회는 없다고 한다.

 

  3~4연에서 화자는 과거 어머니의 사랑이 있는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과거를 회상한다. 그때 어머니는 누이의 곱슬머리를 어루만지며 누이가 잠들 때까지, 기름이 닳아 등불이 꺼지는 늦은 밤까지, 우리가 듣고 싶어 하던 블라디보스토크에 관한 이야기를 서투른 러시아 말도 섞어가며 들려주셨음을 떠올린다.

 

  5~6연에서 화자는 현실의 시점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마음에 스며드는 ‘어머니의 입김’이 어질고, 이야기를 드려주시던 ‘어린 기억’이 ‘귀성스럽다’고 느끼며, ‘마음의 은줄에 작은 날개를 털라’라는 말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적극적으로 떠올리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추억은 어린 시절에 대한 화자의 그리움을 강조하는 것이며, 다음 연에서 묘사되는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화자의 절망감을 돋보이게 한다.

 

  7~8연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 화자는 ‘우라지오’ 항구 가까이, 드나드는 배 하나 없는 부두에 서서 ‘나는 멧비둘기가 아니건만/ 날고 싶어 날고 싶어’라고 진술한다. 이 시에서 화자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멧비둘기.가 되어 자신이 그리워하는 고향으로 날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여기서 멧비둘기는 두보의 작품 <귀안(歸雁)>에 나타나는 ‘기러기’와 마찬가지로 화자에게 있어 부러움의 대상이자 고향으로 가고 싶어하는 화자의 심정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여 보여 주는 사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라지오의 바다는 얼음이 두껍다’와 ‘가도 오도 못하는 우라지오’라는 표현은 모두,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 처지에 대한 절망감이 아울러 드러나 있는 고향의 노래이다.

 

 

▲작자 이용악(李庸岳, 1914~1971)

 

 

  시인. 함북 경성 출생.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5년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한 후 6·25 때 월북. 그는 일제 강점기에 만주 등지로 떠돌며 살아야 했던 민족의 비극적 현실을 시로 형상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시집으로는 《분수령》(1937), 《낡은 집》(1938), 《오랑캐꽃》(1947) 등이 있다. 1949년 현대시인전집의 제1집으로 〈이용악집〉이 나왔다. 월북 후, 남한에 《이용악 시전집》(1988), 《북쪽은 고향》〉(1989),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1989) 등이 출간되었다.

 

 

►해절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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