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위에서>와 <달 있는 제사>
- 이용악
시 <다리 위에서>와 <달 있는 제사>는 이용악(李庸岳, 1914~1971)의 작품이다. 두 작품은 1947년 아문각에서 출판한 그의 세 번째 시집 《오랑캐꽃》에 수록되어 있다.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한 그는 처음에는 일제의 수탈로 황폐해진 고향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발표했고, 이어 만주 등지를 유랑하는 한민족의 피폐한 삶을 탁월한 시어로 형상화한 작품을 많아 썼다. 이 두 작품은 후자에 해당한다.
A. 다리 위에서
바람이 거센 밤이면
몇 번이고 꺼지는 네모난 장명등*을
궤짝 밟고 서서 몇 번이고 새로 밝힐 때
누나는
별 많은 밤이 되어 무섭다고 했다
국숫집 찾아가는 다리 위에서
문득 그리워지는
누나도 나도 어려선 국숫집 아이
단오도 설도 아닌 풀벌레 우는 가을철
단 하루
아버지의 제삿날만 일을 쉬고
어른처럼 곡*을 했다.
◎시어 풀이
*장명등(長明燈) : 대문 밖이나 처마 끝에 달아 두고 밤에 켜는 유리등.
*곡(哭) : 장례나 제사를 지낼 때 소리 내어 욺. 또는 그런 울음.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국수집을 찾아가는 다리 위에서 가난했던 유년 시절과 누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 유년 시절과 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인 ‘나’는 다리 위에서 힘들게 살았던 어린 시절의 힘겨운 삶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용악이 살던 고장은 국경 근처 두만강에서 남동쪽으로 떨어진 함경도 경성이다. <국경의 밤>으로 널리 알려진 김동환 시인이 동향의 선배다. 그는 김동환의 <국경의 밤>에 몹시 끌린 이유 중의 하나는 시적 배경과 가족사가 별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두만강 변의 소금 밀수업의 집안에서 태어난 이용악은 이른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극심한 가난 속에서 성장, 줄곧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는 그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쓰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모두 3연으로 된 이 시는, 현재(2연)에서 과거(1연 3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데, 1연에서는 유년 시절 어린 누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화자인 ‘나’와 누나는 밤늦도록 일을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다. ‘바람이 거센 밤이면/ 몇 번이고 꺼지는 네모난 장명등을/ 궤짝 밟고 서서 몇 번이고 새로 밝힐 때/ 누나는/ 별 많은 밤이 무섭다고 했다’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바람이 거센 밤’은 유년기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며, ‘별 많은 밤이 무섭다’라고 한 누나의 말은 여린 감수성을 가진 누나가 고난의 현실을 두려움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2연에서 화자는 국숫집으로 가는 다리 위에서 누나와 함께 국숫집에서 일했던 과거를 추억하고 있다. ‘국숫집 찾아가는 다리 위에서 문득 그리워지는/ 누나도 나도 어려선 국숫집 아이’. 여기서 ‘다리’는 화자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는 매개체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공간이며, ‘국숫집’은 남편을 잃은 어머니가 삶의 방편으로 삼았던 일터였다. 그래서 남매는 어린 나이지만 일손이 달릴 때는 일을 거들었을 것이고, 남매는 어머니가 일하시는 곳이 국숫집이라 이래저래 ‘국숫집 아이’로 통했을 것이다.
3연에서는 그 옛날 어머니는 아버지도 없이, 한 몸에 두 몫을 하느라 단오도 설도 쉬지 못하고 겨우 ‘풀벌레 우는 가을철/ 단 하루’만 쉴 정도로 과중한 일에 시달리며 고단하게 살아왔다. 여기서 ‘단 하루’는 아버지의 제삿날이며, ‘어른처럼 곡을 했다’라는 것은 누나에게 초점을 맞추어 어린 시절부터 어른스러웠던 누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B. 달 있는 제사
달빛 밟고 머나먼 길 오시리
두 손 합쳐 세 번 절하면 돌아오시리
어머닌 우시어
밤내 우시어
하아얀 박꽃 속에 이슬이 두어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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