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그리움 / 이용악

by 혜강(惠江) 2020. 8. 11.

 

 

 

 

그리움

 

 

-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협동》 (1947) 수록

 

 

◎시어 풀이

 

*백무선(白茂線) : 함경북도 백암에서 두만강의 삼림 지대를 가로질러 무산을 잇는 철도.

*연달린 : 끊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

 

 

▲이해와 감상

 

 

  1947년 2월 《협동》에 발표된 작품으로 이용악의 네 번째 시집 《이용악집》(1949)에 수록되어 있다. 이용악의 시에서는 보기 드문 연가풍의 작품이다. 광복 직후 홀로 상경해 서울에서 생활하던 시인이 함경북도 무산(茂山)의 처가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는 절실한 마음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는 혹독하게 추운 겨울밤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고향에 눈이 내리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인 ‘너’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고향에 복된 눈이 내리기를 바라고 있다.

 

  전 5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수미 상관의 기법을 사용하여 시의 안정감을 주고 주제를 강조하고 있으며, 1,2, 3연의 끝 구절에 ‘~는가’라는 의문형 종결어미(수사적 의문)를 반복으로 사용하여 가족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음성상징어를 사용하여 대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눈이 오는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라고 진술한다. 이 시에서 핵심 시어는 ‘눈’이다. ‘눈’은 일반적으로 차가운 이미지로 쓰이지만, 이 시에서는 포근하고 아늑한 이미지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정서와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북쪽 지방의 겨울은 눈이 많은 지역이어서 겨울이면 온통 백색 세상이 된다. 그러기에 ‘눈’은 고향을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로 화자는 ‘눈’을 보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다.

 

  2~3연은 두고 온 고향을 상상하며 고향에 ‘복된 눈’이 내리기를 소망하고 있다. 화자는 겨울이면 화물을 가득 싣고 험한 절벽을 돌아 느릿느릿 달리는 화물차 검은 지붕 위로 하얗게 눈이 내리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 모습을 화자는 음성상징어 ‘느릿느릿’의 사용과 ‘흰눈’과 ‘검은 지붕’의 색채의 대비를 통하여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산이 연이어 붙어 있는 두메산골에 남기고 온 고향 마을에 ‘복된 눈’이 내리기를 소망한다. 여기서 화자는 ‘눈-함박눈-복된 눈’으로 자연현상을 주관적으로 변용시켜 사랑하는 가족이 축복 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4~5연은 추운 겨울밤에 느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며, 수미 상관의 기법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잉크병’마저 얼어붙는 혹독한 밤에 화자는 가족이 못 견디게 그리워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에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여기서 ‘차마’라는 시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이 응축되어 있다. 화자는 이 시를 통해 가족ㄹ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을 절실한 어조로 형상화함으로써 따뜻한 가족애를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초기의 모더니즘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현실적 삶의 세계를 구상화한 이용악의 후기 시로 뛰어난 현실 인식과 시적 감수성을 잘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작자 이용악(李庸岳, 1914~1971)

 

 

  시인. 함북 경성 출생.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5년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한 후 6·25 때 월북. 그는 일제 강점기에 만주 등지로 떠돌며 살아야 했던 민족의 비극적 현실을 시로 형상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시집으로는 《분수령》(1937), 《낡은 집》(1938), 《오랑캐꽃》(1947) 등이 있다. 1949년 현대시인전집의 제1집으로 〈이용악집〉이 나왔다. 월북 후, 남한에 《이용악 시전집》(1988), 《북쪽은 고향》〉(1989),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1989) 등이 출간되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