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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공사장 끝에 / 이시영

by 혜강(惠江) 2020. 8. 10.

 

 

 

공사장 끝에

 

- 이시영

 

"지금 부숴 버릴까"

"안돼, 오늘 밤은 자게 하고 내일 아침에…… "

"안돼, 오늘 밤은 오늘 밤은이 벌써 며칠째야? 소장이 알면……"

"그래도 안돼……"

두런두런 인부들 목소리 꿈결처럼 섞이어 들려오는

루핑 집* 안 단칸 벽에 기대어 그 여자

작은 발이 삐져나온 어린것들을

불빛인 듯 덮어주고는

가만히 일어나 앉아

칠흑*처럼 깜깜한 밖을 내다본다

            - 《바람 속으로》(1986) 수록

 

◎시어 풀이

*루핑 집 : 아스팔트 찌꺼기로 코팅한 두꺼운 종이로 지붕을 만들어 얹은 집.

*칠흑 : 옻칠처럼 검고 광택이 있음. 또는 그런 빛깔.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산업화 · 도시화의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철거민의 비참한 삶과 이러한 폭력을 가해야 하는 철거반 인부의 상황을 극적 구성을 활용하여 형상화한 시이다.

  공사장 끝에서 철거를 망설이는 인부들의 대화와 그 대화를 듣고 불안해하는 철거민의 심리를 극적 장면을 통해 객관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도시 빈민의 비극적인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공사장 인부들과 철거를 앞두고 암담해 하는 여자를 관찰자 입장에서 장면 중심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대화 형식을 통해 현장감과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으며, 비극적인 상황을 절제된 언어로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담담한 목소리는 소외된 삶의 비극성을 더욱 강조한다.

  이 작품의 장면은 집 밖과 집 안의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집을 부수려는 집 밖 인부들의 대화를 들려준 후, 철거 위기에 놓여 있는 집 안의 가족들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1~4행에서는 집 밖에서 공사장의 철거민 인부들의 대화가 극적 방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시적 긴장감과 현장감이 강화된다. ‘지금 부숴 버릴까’라는 말에 다른 사람이 ‘안 돼, 오늘 밤은 자게 하고 내일 아침에……’라며 반대한다. 그 이유는 안에 사람들이 자고 있기 때문인데, 말없음표로 생략한 것은 ‘내일 아침에’ 철거한다는 확신이 없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그러기를 며칠, 공사장의 철거반 인부들은 소장의 명령에 따라 집을 부수려 하지만, 안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갈등 상황에 놓여 있다. 이로 볼 때, 화자가 인부들을 무자비하게 집을 때려 부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남의 처지를 배려하는 따뜻한 인간미를 갖춘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10행에서는 ‘루핑 집’ 안의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철거의 대상인 ‘루핑 집’은 겨우 비를 막을 정도의 부실한 집으로, 그나마 주변의 개발로 밀려날 처지에 놓여 있다. 그 집 안에는 벽에 기대어 바깥 인부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여자와 잠을 자는 아이들이 있다. 바깥 인부들의 목소리를 ‘꿈결처럼 섞이여 들려오는’이라고 표현한 것은 희망과 절망이 섞여 꿈처럼 어렴풋이 들리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여자는 현실의 고통을 모른 채 잠든 ‘어린것들’에게 ‘불빛인 듯’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여 발에 이불을 덮어 준다. 아이들을 지키려는 모성애와 함께 아이들이 잠을 깨면 철거가 시작될 수도 있다는 불안함과 초조함이 느끼고 있다. 그리고는 ‘가만히 일어나 앉아/ 칠흑처럼 깜깜한 밖을 내다본다.’ 여기서 ‘칠흑처럼 깜깜한 밖’은 그 여자가 처한 암담한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다. 직면한 시련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인은 암담한 현실처럼 깜깜한 바깥을 내다볼 뿐이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고, 갑자기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면서 도시 주변에는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판잣집이 늘어났다. 그 후 이들에 대한 이주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대규모 공장, 아파트 건설이 진행되면서 철거민들의 고통이 현실화되었다. 이 시는 철거의 위협에 고통받는, 무허가 주택에 사는 빈민의 비참한 삶의 모습을 감정을 절제한 차분한 어조로 그리낸 작품이다.

 

▲작자 이시영(李時英, 1949 ~ )

  시인. 전남 구례 출생. 1969년 《중앙일보》에 시조 <수>가, 《월간 문학》에 시 <채탄> 외 1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의 시는 대체로 민중적 현실에 바탕을 둔 현실 비판의 목소리가 주조를 이루며, 리얼리즘 시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시집으로 《만월》(1976), 《바람 속으로》(1986), 《길은 멀다 친구여》(1988), 《이슬 맺힌 사랑 노래》(1991), 《무늬》(1994), 《은빛 호각》( 2003),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2007),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2012), 《호야네 말》(2014), 《하동》(2017)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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