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쓴 시
- 이승은
햇살의 고요 속에선
ㅉㅉㅉ, 소리가 나고
바람은 쥐가 쏠 듯
ㅅㅅㅅ, 문틈을 넘고
후두엽 외진 간이역
녹슨 기차 바퀴 소리
- 시집 《시간의 안부를 묻다》(2003)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조 작품은 참신한 발상을 바탕으로 귀로 감지한 독특한 소리의 이미지와 화자의 외로운 정서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청각적 심상과 섬세한 언어의 결을 통해 자연의 소리를 묘사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쓸쓸한 내면 풍경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조는 시인의 네 번째 시조집인 《시간의 안부를 묻다》에 실려 있다. 3장 6구로 이루어진 평시조이지만, 청각을 활용한 감각적인 표현이 현대 시의 그것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현대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우리말의 결과 어감을 살린 언어에 대한 감각은 매우 탁월하여 시조의 현대성을 실현한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화자는 제목에서 보인 대로 햇빛과 바람 소리를 듣고 ‘귀의 언어’로 번역하였다. ‘ㅉㅉㅉ’이나 ‘ㅅㅅㅅ’은 모음이 없어 그 자체로 발음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귀에 들리는 인상대로 오롯이 받아 적은 ‘귀의 언어’인 것이다. 그러나발음할 수는 없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화자는 그 ‘소리’와 ‘언어’를 제재로 하여 귀로 감지한 풍경을 감각적이며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조는 청각적 심상을 통해 자연의 소리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러한 소리를 통해서 시적 자아의 내면의 모습을 환기해준다. 초장에서는 햇살의 이미지를, 중장에서는 바람의 이미지를 묘사하고, 종장에서는 화자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초장에서 햇살의 소리를 묘사하고 있다. 시적 자아는 고요 속에 햇살이 내리쬐는 소리를 갈라지는 듯하고 터지는 듯한 소리로 느끼며 ‘ㅉㅉㅉ’라는 자음에 담아내고 있다.
시조 시인. 충청남도 서천 출생. 1979년 만해 백일장에서 시조 <깃발>이, 같은 해 KBS와 노산문학회가 주최한 전국 민족시 백일장에서 시조 <한가위>가 장원으로 뽑혀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형태에서 벗어난 율격의 다양성을 보여 주는 시조를 썼다. 초기에는 섬세한 감각을 바탕으로 미묘한 정서의 울림을 형상화하면서 시간의 미묘한 작용과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후기에는 모성성과 생명성을 주로 노래했다. 시조으로 《내가 그린 풍경》(1990을 비롯하여 《시간의 물그늘》(1992), 《길은 사막속이다》(1995), 《시간의 안부를 묻다》(2003), 《환한 적막》(2007), 《꽃밥》(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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