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우울한 샹송 / 이수익

by 혜강(惠江) 2020. 8. 8.

 

 

 

우울한 샹송*

 

 

-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은 다치면서라도 소리 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 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지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 시집 《우울한 샹송》(1969)

 

 

◎시어 풀이

 

*샹송(프 chanson) : 서민적인 가벼운 내용을 지닌 프랑스의 대중가요.

*혼미(昏迷) : 정신이 헛갈리고 흐리멍덩함. 또는 그런 상태

*기진(氣盡)한 : 기운이 다하여 힘이 없는.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사랑을 잃어버리고 난 후 화자의 아쉬움과 회한, 기대를 함께 드러낸 작품이다. 화자인 ‘나’는 편지를 가지고 우체국을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잃어버린 사랑을 아파하며 그 사랑이 회복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격정적이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정서를 서술하고 있는 이 시는 수미 상관의 구성을 통해 화자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까’의 어미를 사용한 설의적 표현을 통해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회의와 기대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우체국'에 가서 잃어버린 자신의 사랑을 찾고자 하지만 그것이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점에서는 회의를 드러낸다. 첫 문장인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에서 ‘우체국’은 편지나 전보 등을 취급하는 곳으로 서로의 소통공간이다. 화자는 편지를 가지고 우체국을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고자 하는 갈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우체국에서 ‘풀잎 되어 젖어 있는’ 잃어버린 사랑의 비애만 확인할 뿐이다.

 

  2연에서는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고자 하는 화자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치는 사람을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 사람으로 표현하며 그 꽃들의 웃고 있는 모습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자신은 그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연인의 소식을 전하고 들을 수 없기에, ‘어쩌면 나도 웃고 있는 것일까’라며 그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다.

 

  그리고 3연에서는 잃어버린 사랑의 아픔으로 힘겨워하는 화자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은 우체국에서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가며, ‘꽃불처럼 밝은 빛’인 행복을 안고 돌아간다. 하지만 화자는 잃어버린 사랑의 슬픔으로 인해 행복한 내용의 편지도 읽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쳐 있다. 그래서 화자는 아픔으로 힘겨워한다.

 

  마지막 4연에서는 수미 상관의 기법으로 힘들고 지치지만, 다시 사랑이 올 수도 있음을 가정하고, 자신은 그때 어떻게 그 사랑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다. ‘그곳에서 발견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이라는 표현은 화자가 현재 사랑을 잃은 상태이지만, 사랑이 회복되는 것을 전혀 부정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시는 사랑에 잃은 슬픔 속에서도 사랑의 화복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고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우울한 샹송>일 수밖에 없다.

 

 

▲작가 이수익(李秀翼, 1942~)

 

 

  시인, 경상남도 함안 출생. 196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고별>, <편지> 등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젊은 날에 대한 추억, 일상의 사소한 사물과 생명에 대한 애정을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적 체계 속에 담아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시집 《우울한 샹송》은 그의 다른 시집 《아득한 봄》과 함께 시의 전개가 매우 구조적으로 잘 이루어져 완결 미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애상적이고 우수적인 미를 느끼게 한다.

 

  시집으로 《결빙의 아버지》, 《고별》, 《야간열차》(1978), 《우울한 샹송》(1969), 시선집 《슬픔의 핵》(1983), 《단순한 기쁨》(1986), 《그리고 너를 위하여》(1988), 《아득한 봄》(1991), 《푸른 추억의 빵》(1995),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2000), 《불과 얼음의 콘서트》(2002), 《꽃나무 아래의 키스》(2007), 《처음으로 사랑을 들었다.》(2010), 《천년의 강》(2013), 《조용한 폭발》(2020)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로 쓴 시 / 이승은  (0) 2020.08.09
결빙(結氷)의 아버지 / 이수익  (0) 2020.08.08
단오(端午) / 이수익  (0) 2020.08.08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0) 2020.08.07
가정(家庭) / 이상  (0) 2020.08.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