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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가정(家庭) / 이상

by 혜강(惠江) 2020. 8. 7.

 

 

 

 

가정(家庭)

 

 

- 이상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조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대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보다.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 《카톨릭청년》(1936) 수록

 

 

◎시어 풀이

 

*제웅 : 짚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든 것(음력 정월 열나흗날 저녁의 액막이나, 무당이 앓는 사람을 위해 죽었다고 거짓 장사를 지내는 데 씀)

 

 

▲이해와 감상

 

 

  가장(家長)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가정으로부터 소외당한 화자가 가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을 표현한 작품이다. 화자인 ‘나’는 집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쳐 있다. 왜냐하면,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화자가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독특한 표현기법을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자의식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란 개인의 의식에 떠올라 그의 이성적 사고의 흐름에 병행하여 의식 일부를 이루는 시각적·청각적·연상적·잠재 의식적인 수많은 인상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한 기법이다. 이 기법은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처음 사용한 말로, 20세기 소설가들이 이성적인 사고에만 국한하지 않고 등장인물 의식의 흐름 전체를 포착하고자 인간의 의식을 조각조각 분리하지 않고 마치 강물이 흐르듯이 연속적으로 서술한다. 즉, 언어 표현 이전 단계에 속하는 사고, 심상, 언어의 자유연상 등을 문학에 도입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0년대 초부터 초현실주의적이고 실험적인 시를 발표하였으며, 주로 의식 세계의 심층을 탐구하는 작품을 창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상이었고, 주요 작품으로 ‘거울’, ‘오감도’, ‘가정’ 등의 시와 소설 ‘날개’, ‘종생기’, 수필 ‘권태’ 등이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의식의 흐름’의 기법에 따라 띄어쓰기를 무시하여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동시에, 내면세계를 아무런 구속 없이 자유롭게 드러냄으로써 시인의 답답하고 절망적인 의식 세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품의 내용을 따라가 보면, 화자는 현재 원만한 가정생활을 해 나가지 못하고 있다.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아무리 잡아당겨도' 쉽게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바로 화자가 가정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음을 알려 준다. 그것은 화자가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화자는 무력감과 자책감을 느끼면서 괴로워한다. ‘나는밤속에드러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라는 표현은 화자가 현실에서 느끼는 무력감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이다. 이런 상황을 화자는 '문고리에 쇠사슬 늘어지듯 매달리는' 것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문을열려고안열리는문을열려고’ 이 마지막 문장은 화자의 현실적 무기력함을 나타내는 동시에 가정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정상적인 삶을 회복하고 싶다는 화자의 절박한 심정을 드러낸 것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철저한 독백으로 자의식의 내면을 토로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오히려 이 작품은 주제 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단순한 자의식적 관념을 드러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화자 자기 삶의 일상에 대한 사색을 통해 고립되고 폐쇄된 생활 부재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내면적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인의 삶을 동경하는 모습은 곧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분열 현상을, 화자의 자의식 내부에서 경험함으로써 나타난 결과이다.

 

  따라서, 문장에 대한 전통적 기법이나 의식을 거부하고, 행과 연의 구분은 물론, 띄어쓰기까지 무시한 것은 작가의 의도적 배려로서 인생에 대한 상식적인 질서까지도 거부하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시인 이상이 자신을 ‘제웅’과 동일시한 이유

 

 

  ‘제웅’이란 우리 민속에서, 앓는 사람이나 살이 낀 사람을 위하여 짚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집 밖에 내다 버린 주물(呪物)이다. 이상 시인은 태어나자마자 조부의 뜻을 따라 아들이 없는 백부의 큰아들 겸 김씨 가문의 막중한 계승자가 되어 기대와 억압 속에서 문벌과 가계의 중요성을 내세우는 조부와 백부의 봉건적 유교 윤리에 갇히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문벌의 제웅, 유교적 가족 관념이 빚어낸 가문의 제물이나 희생자로 자신을 느끼면서, 그 후 자신을 '제웅'과 동일시한 것이다.

 

 

▲작가 이상(李箱, 1910~1937)

 

 

  시인, 소설가.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서울 출생. 3세 때부터 부모 슬하를 떠나 통인동 본가 큰아버지 집에서 성장. 1929년 경성고등 공업학교 건축과 졸업. 종로에서 다방 ‘제비’ 경영. 1934년 구인회(九人會) 가입. 1936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나 1937년 사상 불온 혐의로 구속. 이로 인하여 건강이 더욱 악화하여 그해 4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 활동은 1930년 《조선》에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33년 《가톨릭 청년》에 시 <꽃나무>, <거울> 등을,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烏瞰圖)> 등 다수의 시작품을 발표하였다. 특히, <오감도>는 난해한 시로서 당시 문학계에 큰 충격을 일으켜 독자들의 강력한 항의로 연재를 중단하였던 그의 대표 시다. 시뿐만 아니라 <날개>(1936), <동해(童骸)>(1937) 등의 소설도 발표하였다.

 

  이상은 1930년대를 전후하여 세계를 풍미하던 자의식 문학 시대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의식 문학의 선구자인 동시에 초현실주의적 시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시는 전반적으로 억압된 의식과 욕구 좌절의 현실에서 새로운 대상(代償) 세계로 탈출하려 시도하는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해설 및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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