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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by 혜강(惠江) 2020. 8. 7.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 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2005)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는 가장이 일찍 집에 들어가 소박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우리에게 ‘집’은 전쟁터와 다름없는 생업의 현장에서 돌아와 모든 것을 위로받고, 지친 심신을 쉴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이다. 시적 화자는 어두운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던 지난날의 삶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며, ‘이제는 일찍 집으로 돌아가자’라는 표현으로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어한다.

  이 시는 ‘밖’과 ‘집’이라는 대립적 공간을 제시하여 화자의 소망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지난 삶을 고백적으로 표현하면서 청유형 종결 어미 ‘~ 자’를 활용하여 자신의 다짐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상대방에게 함께 행동하기를 권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1~3행에서 화자는 첫머리에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라고 한다. 이 말은 그동안 일찍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가정보다 직장을 우선시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길 정도로 화자에게는 직장이 삶에 있어 최우선의 가치였다. 그런 화자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편하게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고 싶은 화자의 소망을 드러낸 것이다.

  4~10행에서 화자는 ‘나는 벌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라며 잘못된 지난 삶을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을 표현한 것으로, ‘벌서듯’이라는 표현은 ‘밖으로만’ 돌았던 지난날 자신의 잘못된 삶에 대한 혹독한 자기 채찍으로 볼 수 있다. 이어 화자는 잘못되었던 지난 삶에 대하여 두 가지를 제시한다. 그 하나는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것은 이겨야만 살 수 있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겪는 직장인의 슬픈 자화상을 엿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 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라고 한다. 여기서 ‘상처’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상처일 수도 있으나 그것보다는 직장인으로 겪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실적 부진으로 인한 위로부터의 질책이나 부담감, 업무상의 실수나 잘못, 직장 내의 원만하지 못한 상하 관계 등 상처가 얼마나 많겠는가? 이런 상처를 잠시라도 위로받기 위해서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며 밤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다 어두워서야 집으로 향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족들에게 강인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가장의 힘들었던 삶의 모습, 화자는 이렇게 살아온 지난 삶에 대한 회한을 읊고 있다.

  그러나 11행에서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라는 말을 앞세워, 가정의 평범하고 소박한 행복을 누리고 싶은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골목길 감나무’를 향하여 아는 체를 한다. 이것은 ‘수고한다’라는 의미에서 동류의식을 느낀 화자가 감나무에 애정을 표하는 행위이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위안이다. 그리고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자는 것은 무관심하게 살아온 생활 태도를 바꾸어 이웃들과 정답게 어우러져 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선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 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라고 한다. 이것은 한 가장의 가장으로서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리고’, 늘 강인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던’ 그때와는 다르게 살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때와는 다르게 일찍 들어가서 ‘불을 있는 대로 켜 놓고’ 환한 곳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행복한 일상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음이 어찌 화자뿐이겠는가? 이 시의 표현처럼 우리 세대는 그렇게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일하고, 이런저런 일로 부대끼며 밤늦게까지 일하다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집에 돌아가곤 했다. 또 필요한 경우 주말 출근도 불사하며 일했다. 그것이 직장에 대한 성실함과 충성심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있다. 이제는 ‘직장이 내 삶의 전부일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 적당히 일하고 여가를 즐기며,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를 원하고 있다. 누군가 ‘저녁이 있는 삶’을 주장한 적이 있다. 과도한 일에서 벗어나 자신과 가정이 행복한 저녁을 누리자는 뜻일 것이다. 이제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법정근로시간도 정해져 있으니, 즐겁게 일하고 개인의 행복을 증진하는 균형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이상국 (1946~ )

  시인,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심상》에 신인상에 <겨울 추상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동해별곡》(1985), 《내일로 가는 소》((1989), 《우리는 읍으로 간다》(1992), 《집은 아직 따뜻하다》(1998),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2005), 《달은 아직 그달이다》(2016) 등이 있고, 시선집으로 《국수가 먹고 싶다》(2012)가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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