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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단오(端午) / 이수익

by 혜강(惠江) 2020. 8. 8.

 

 

 

단오(端午)

 

 

 

- 이수익

 

 

 

음(陰) 오월에도 초닷새 수릿날*엔

아내여, 그대는 춘향이가 되라.

그러면 나는 먼 숲에 숨어들어 그대를 바라보는

이 도령이 되리라.

 

창포*를 물에 풀어 머리를 감고

그대는 열일곱, 그 나이쯤이 되어

버들가지엔 두 가닥 그넷줄을 매어

그대 그리움을 힘껏 밟아 하늘로 오르면,

나도 오늘 밤엔 그대에게

오래도록 긴 긴 편지를 쓰리라.

 

하늘로 솟구쳤다 초여름 서늘한 흰 구름만 보고

숨어 섰던 날 보지 못한 그대의 안타까움을

내가 아노라고……

그대 잠든 꿈길 위에 부치리라.

 

 

시집 《단순한 기쁨》(1986) 소록

 

 

◎시어 풀이

 

*수릿날 : 단오(端午), 우리나라 명절의 하나. 음력 5월 5일로 그네뛰기·씨름 등을 함. 단양(端陽). 수릿날. 중오절(重午節).

*창포(菖蒲) :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 잎은 창검같이 뾰족하고 길며, 초여름에 황록색 꽃이 남. 단옷날에 창포물을 만들어 씀.

 

 

▲이해와 감상

 

  춘향이와 이 도령의 그리움과 애타는 사랑은 어쩌면 모든 이들의 소망일지도 모른다. 화자는 수릿날에 펼쳐지는 그들의 사랑놀이에 빗대어 아내에 대한 진솔한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고전 소설인 <춘향전>의 ‘춘향 이야기’를 모티브를 하여 주제를 드러내고 있는데, 청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의지적 종결 어미인 ‘~리라’를 반복 사용하여 화자의 굳은 사랑을 드러내고 있으며, 운율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연은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다짐하고 있다. ‘음오월에도 초닷새 수릿날엔/ 아내여, 그대는 춘향이가 되라’라고 말하고, ‘나는 먼 숲에 숨어들어 그대를’ 바라보겠다고 진술한다. 화자는 아내와 자신을, 수릿날 그리움으로 그네를 힘껏 밟는 춘향이(아내)와 숲에 숨어 춘향이를 바라보는 이 도령(화자)으로 설정하여 부부간에 간절한 사랑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아내인 ‘춘향이’는 이 시의청자가 되고, 나 ‘이 도령’은 화자가 되어 아내와 남편 사이의 사랑의 다짐을 드러내고 있다.

 

  2연은 아내의 그네 타기와 화자의 편지 쓰기를 통해 부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열일곱 나이의 ‘그대’는 수릿날의 의례대로 창포물에 머리 감고, 버들가지에 맨 그네를 타고 그리움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면, 나도 그에 대한 응답으로 밤늦도록 긴긴,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아 편지를 쓰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편지’는 아내에 대한 화자의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소재로 활용된 것이다. 아내의 그리움에 대한 화자의 아름다운 화답이다.

 

  3연에서는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부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화자는 먼저 ‘그대’가 그리움으로 그네를 밟던, ‘하늘을 솟구쳤다 초여름 서늘한 흰 구름만 보고 숨어 섰던 날’을 기억해 낸다. 여기서 ‘초여름 서늘한 흰구름’은 그네를 탄 춘향이가 느꼈을 실망감 혹은 안타까움이며, ‘숨어 섰던’ 이는 다름 아닌 숲속에 숨어들어 춘향이를 지켜보던 이 도령으로, 이 모습을 보지 못한 이는 춘향이었다. 그러기에 화자는 그날의 춘향이 느꼈을 ‘안타까움’을 내가 아노라고 ‘그대의 잠든 꿈길 위에 편지를 써서 부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화자인 이 도령이 그대(춘향)의 안타까움에 공감한다는 의미로,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춘향이와 이 도령의 사랑 이야기를 변용하여, 아내가 춘향이가 되면 자신은 이 도령이 되어 사랑을 담은 긴 편지를 써 부치겠다며 아내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드러내면서 부부간의 진정한 사랑은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이수익(李秀翼,1942~)

 

 

  시인,경상남도 함안 출생. 196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고별>, <편지> 등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젊은 날에 대한 추억, 일상의 사소한 사물과 생명에 대한 애정을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적 체계 속에 담아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시집으로 《결빙의 아버지》, 《고별》, 《야간열차》(1978), 《우울한 샹송》(1969), 시선집 《슬픔의 핵》(1983), 《단순한 기쁨》(1986), 《아득한 봄》(1991), 《푸른 추억의 빵》(1995),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2000), 《그리고 너를 위하여》(1988), 《아득한 봄》, 《불과 얼음의 콘서트》(2002), 《꽃나무 아래의 키스》(2007), 《처음으로 사랑을 들었다》(2010), 《천년의 강》(2013), 《조용한 폭발》(2020)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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