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 앞에서
- 이승하
식사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교인을 향한
인류의 죄에서 눈 돌린 죄악을 향한
인류의 금세기 죄악을 향한
인류의 호의호식*을 향한
인간의 증오심을 향한
우리들을 향한
나를 향한
소말리아
한 어린이의
오체투지*의 예가
나를 얼어붙게 했다.
자정 넘어 취한 채 귀가하다
주택가 골목길에서 음식물을 게운
내가 우연히 펼친 『TIME』지의 사진
이 까만 생명 앞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 시집 《폭력과 광기의 나날》(1993)
◎시어 풀이
*호의호식(好衣好食) :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음.
*오체투지(五體投地) : 절하는 법의 하나. 먼저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를 땅에 닿도록 절을 함.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기아와 빈곤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진솔한 자세로 반성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사진과 글을 나란히 배치하고, 글 또한 1연과 2연이 상하 대칭 구조로 시행을 배치하여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유사한 시구의 반복과 종결 어미의 생략으로 의도적으로 주제를 강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시는 마치 절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굶주린 아이와 그 아이의 앙상한 어깨를 잡은 어른의 손이 보이는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된다. 시의 내용으로 볼 때 소말리아 한 어린이의 오체투지 모습이다. 그리고 사진 아래의 1연은 기아와 빈곤에 무관심하고 죄악을 저지르는 인류에 대한 비판을 담았고, 2연은 소말리아 어린이의 사진을 보며 이기적인 삶에 대한 반성 촉구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연에서 화자는 기아와 빈곤을 방치하는 대상으로 ‘교인. 인류, 인간, 우리들, 나’를 나열한다. 이들은 타인의 삶에 무관심한 채 자신의 배부름에만 감사드리고, 죄를 외면한 채 호의호식하며, 증오심만 불태우는 사람들이다. 화자는 이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면서, 지구상에 기아와 빈곤을 유발한 책임이 화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인류의 죄악이 그 원인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점점 짧아지는 시행 구성은 비판을 집중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시의 마지막을 종결 어미 없이 ‘무엇을’로 마무리함으로써 읽는 이의 생각을 확장해 이 문제가 화자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두 생각해 볼 문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의 고향 6 – 초설(初雪) / 이시영 (0) | 2020.08.10 |
---|---|
공사장 끝에 / 이시영 (0) | 2020.08.10 |
귀로 쓴 시 / 이승은 (0) | 2020.08.09 |
결빙(結氷)의 아버지 / 이수익 (0) | 2020.08.08 |
우울한 샹송 / 이수익 (0) | 2020.08.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