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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이 사진 앞에서 / 이승하

by 혜강(惠江) 2020. 8. 10.

 

 

 

 

이 사진 앞에서

 

 

 

- 이승하

 

 

 

식사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교인을 향한

인류의 죄에서 눈 돌린 죄악을 향한

인류의 금세기 죄악을 향한

인류의 호의호식*을 향한

인간의 증오심을 향한

우리들을 향한

나를 향한

 

소말리아

한 어린이의

오체투지*의 예가

나를 얼어붙게 했다.

자정 넘어 취한 채 귀가하다

주택가 골목길에서 음식물을 게운

내가 우연히 펼친 『TIME』지의 사진

이 까만 생명 앞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 시집 《폭력과 광기의 나날》(1993)

 

 

◎시어 풀이

 

*호의호식(好衣好食) :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음.

*오체투지(五體投地) : 절하는 법의 하나. 먼저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를 땅에 닿도록 절을 함.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기아와 빈곤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진솔한 자세로 반성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사진과 글을 나란히 배치하고, 글 또한 1연과 2연이 상하 대칭 구조로 시행을 배치하여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유사한 시구의 반복과 종결 어미의 생략으로 의도적으로 주제를 강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시는 마치 절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굶주린 아이와 그 아이의 앙상한 어깨를 잡은 어른의 손이 보이는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된다. 시의 내용으로 볼 때 소말리아 한 어린이의 오체투지 모습이다. 그리고 사진 아래의 1연은 기아와 빈곤에 무관심하고 죄악을 저지르는 인류에 대한 비판을 담았고, 2연은 소말리아 어린이의 사진을 보며 이기적인 삶에 대한 반성 촉구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연에서 화자는 기아와 빈곤을 방치하는 대상으로 ‘교인. 인류, 인간, 우리들, 나’를 나열한다. 이들은 타인의 삶에 무관심한 채 자신의 배부름에만 감사드리고, 죄를 외면한 채 호의호식하며, 증오심만 불태우는 사람들이다. 화자는 이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면서, 지구상에 기아와 빈곤을 유발한 책임이 화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인류의 죄악이 그 원인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점점 짧아지는 시행 구성은 비판을 집중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연은 1연과는 반대로 시행이 점점 길어지는데, 이것은 반성과 참회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소말리아 한 어린이의 오체투지’는 기아에 허덕이는 모습을 머리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절하는 불교의 예법에 따라 ‘예를 올리고 있다’고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오채투지’처럼 보이는 사진 한 장이 ‘나를 얼어붙게 했다’라는 것은 인류의 죄악상에 대한 충격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화자는 ‘자정을 넘어 취한 채 귀가하다/ 주택가 골목길에서 음식을 게운/ 내가 우연히 펼친 『TIME』지의 사진/ 이 까만 생명 앞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이라고 자책하며 반성한다. 즉, 늦은 밤에 술에 만취하여 잡지 속에 있는 사진 한 장을 보게 된 화자는 너무 먹지 못해 몸조차 가누기 어려운 아이의 사진을 통해 이웃에게 무관심했던 자신을 ‘도대체 한 일 이 무언가’라며, 이웃을 외면하고 살아온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특히, 시의 마지막을 종결 어미 없이 ‘무엇을’로 마무리함으로써 읽는 이의 생각을 확장해 이 문제가 화자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두 생각해 볼 문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작가 이승하(1960 ~ )

 

 

  시인. 경상북도 김천 출생.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화가 뭉크와 함께>로,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으로 등단했다. 문자 언어와 영상 언어를 결합한 독특한 형식 속에서 폭력 없는 세상에 대한 소망을 노래했다

 

  시집으로 《사랑의 탐구》(1987), 《폭력과 광기의 나날》(1993), 《생명에서 물건으로》(1995),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2005),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2007),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2007), 《공포와 전율의 나날》(2015), 《감시와 처벌의 나날》(2016), 《뼈아픈 별을 찾아서》(2020), 《예수 폭력》(2020) 등이 있다. 시론집으로는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10대 명제》,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 《한국 시문학의 빈 터를 찾아서》,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2020) 등이 있다.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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