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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마음의 고향 6 – 초설(初雪) / 이시영

by 혜강(惠江) 2020. 8. 10.

 

 

 

 

마음의 고향 6 – 초설(初雪)

 

 

- 이시영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참새떼 왁자히 내려앉는 대숲 마을의
노오란 초가을 초가지붕에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토란잎에 후두둑 빗방울 스치고 가는
여름날의 고요 적막한 뒤란*에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추수 끝난 빈 들판을 쿵쿵 울리며 가는
서늘한 뜨거운 기적 소리에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빈 들길을 걸어 걸어 흰 옷자락 날리며
서울로 가는 순이 누나의 파르라한* 옷고름에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
아늑한 상큼한 짚벼늘*에 파묻혀
나를 부르는 소리도 잊어버린 채
까닭 모를 굵은 눈물 흘리던 그 어린 저녁 무렵에도 있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고향은 싸락눈 홀로 이마에 받으며
내가 그 어둑한 신작로 길로 나섰을 때 끝났다
눈 위로 막 얼어붙기 시작한
작디작은 수레바퀴 자국을 뒤에 남기며

 

- 시집 《사이》(1996) 수록

 

 

◎시어 풀이

*뒤란 : 집 뒤의 울안.

*파르라한 : 파란빛이 도는

*짚벼늘 : ‘낟가리’의 방언. 낟알이 붙은 곡식의 단을 쌓은 더미.

 

 

▲이해와 감상

 

 

  1996년 제8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인 <마음의 고향 6-초설>은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노래하는 고향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고향이다. 고향을 떠난 화자는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면서 마음속에 담겨 있는 고향의 모습이 점점 잊혀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린 씁쓸한 마음을 절실하게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다르다는 인식에서 시상을 이끌어 내고 있다. ‘내 마음의 고향은 이제’로 시작하여 ‘~에 있지 아니하고’라는 부재(不在)의 상태, 즉 부정적 의미의 시어를 반복하여 고향에 대한 화자의 마음을 반어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므로 화자가 생각하는 ‘마음의 고향’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에 있지 아니하고’의 앞에 묘사된 ‘초가을의 초가지붕, 여름날의 고요 적막한 뒤란, 들판을 쿸쿵 울리며 가는 기적소리, 누나의 파르라한 옷고름, 짚벼늘에 파묻혀 눈물 흘리던 저녁 무렵’의 광경들이다.

 

  또한, 이 시는 대상의 이미지를 상기시키는 여러 가지 구체적 소재를 시각, 청각, 후각 등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하여 열거하여 고향의 정취를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에 활용된 이미지를 보면 시각적 이미지의 ‘노오란 초가을의 초가지붕’, ‘토란 잎에 후두둑 빗방울’, ‘순이 누나의 파르란 옷고름’, ‘눈물 흘리던 그어린 저녁 무렵’이며, 청각적 이미지의 참새 떼 왁자히 내려앉는 대숲’, ‘여름날의 고요 적막한 뒤란’, 공감각적 이미지로는 ‘서늘한 뜨거운 기적 소리’ 등이며, 그 외에도 ‘추수 끝난 빈 들판을 쿵쿵 울리며’ 등 감각적 표현을 통하여 고향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화자는 ‘내 마음의 마음의 고향은/ 싸락눈 홀로 이마에 받으며/ 내가 그 어둑한 신작로 길로 나섰을 때 끝났다/ 눈 위로 막 얼어붙기 시작한/ 작다작은 수레바퀴 자국을 뒤에 남기며’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이 시의 시상이 집중된 곳이다. 화자는 이제 어린때의 화자가 아니므로 신작로를 나서는 순간 고향을 상실한 것을 말하며 고향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내 마음의 마음의 고향은’ 반복하여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드러낸 것이며, ‘어둑한 신작로 길’은 고향에서 도시로 가는 통로로서 부정적 의미를 드러낸다. 그리고 ‘작디작은 수레바퀴 자국을 남기며’는 고향을 떠나올 때의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화자에게 마음의 고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왜냐하면, 마음의 고향은 고향을 떠날 때 이미 끝나버렸기 때문에 추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깊은 상실감과 그리움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화자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여운만을 남길 뿐이다.

 

 

▲작자 이시영(李時英, 1949 ~ )

 

 

  시인. 전남 구례 출생. 1969년 《중앙일보》에 시조 <수>가, 《월간 문학》에 시 <채탄> 외 1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의 시는 대체로 민중적 현실에 바탕을 둔 현실 비판의 목소리가 주조를 이루며, 리얼리즘 시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시집으로 《만월》(1976), 《바람 속으로》(1986), 《길은 멀다 친구여》(1988), 《이슬 맺힌 사랑 노래》(1991), 《무늬》(1994), 《사이》(1996), 《은빛 호각》( 2003),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2007),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2012), 《호야네 말》(2014), 《하동》(2017)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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