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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어둠에 젖어 / 이용악

by 혜강(惠江) 2020. 8. 13.

 

 

 

어둠에 젖어

 

 

 - 이용악

 

 

마음은 피어

포기포기 어둠에 젖어

 

이 밤

호올로 타는 촛불을 거느리고

 

어느 벌판에로 가리

어른거리는 모습마다

검은 머리 향그러이 검은 머리

가슴을 덮고 숨고 마는데

 

병들어 벗도 없는 고을에

눈은 내리고

멀리서 철길이 운다.

 

 

- 시집 《오랑캐꽃》(1947)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타향에서 혼자 병들어 깊은 밤에 그리움에 젖어 있는 화자의 외로운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고향을 떠나 고독한 처지의 화자가 홀로 밤에 촛불을 밝히고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며 자신의 서러운 감정을 절제된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눈 내리는 밤에 외로움을 느끼다가 아른거리는 그리움의 대상을 떠올리고 벗도 없는 타향에서 병든 몸으로 지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서러움을 느낀다. 이러한 화자의 정서는 ‘마음이 어둡다’라는 암울한 심리 상태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화자가 현실에서 느끼는 암담함과 절망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화자의 정서 변화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는 이 시는 추상적 개념을 ‘촛불’과 ‘철길’ 등 구체적 사물로 표현하고, 공감각적 이미지와 반복적 표현, 점층적 표현을 통해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암울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마음은 피어/ 포기포기 어둠에 젖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화자의 마음을 꽃에 비유하여 추상적 개념을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구체화한 것으로, 암울한 심리를 ‘어둠의 젖어’라고 표현하여 외로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2연에서는 외로움이 심화되어 ‘이 밤/ 호올로 타는 촛불을 거느리고’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밤’은 적막과 함께 외로움이 심화되는 시간이며, ‘촛불’은 화자의 정서가 이입된 객관적 상관물로서 화자의 외로운 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외로움은 3연에 오면, 대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바뀐다. 화자는 ‘어느 벌판으로 가리’라는 설의적 표현을 통하여 갈 수 없는 벌판(지향점)이 없음을 드러내면서 멀리 있는 대상을 그리워한다. ‘어른거리는 모습마다 검은 머리 향그러이 검은 머리’에서는 공감각적인 심상을 통해 그리워하는 대상을 구체화하고 있는데, 반복과 점층법을 사용하여 그리움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움의 대상은 ‘향그러이 검은 머리’를 가진 여성을 쉽게 떠올릴 수 있겠으나, 그보다는 고향에 남겨진 가족이나 친구, 나아가 함께 공동체를 구성하며 살았던 모든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은 ‘가슴을 덮고 숨고 마는데’에서 보듯 마음을 아프게 하고 사라질 뿐이다.

 

  그러므로 4연에서 화자는 타향에서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슬픔을 ‘병들어 벗도 없는 고을에/ 눈은 내리고/ 멀리서 철길이 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눈’은 화자로 하여금 외로운 정서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벌판’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 의미를 지닌 것이며, ‘철길’ 역시 화자의 감정이 이입된 대상으로, ‘멀리 철길이 운다’는 표현을 통해 고향에 가지 못하는 화자의 슬픔을 드러내고 있다.

 

 

▲작자 이용악(李庸岳, 1914~1971)

 

 

  시인. 함북 경성 출생.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5년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한 후 6·25 때 월북. 그는 일제 강점기에 만주 등지로 떠돌며 살아야 했던 민족의 비극적 현실을 시로 형상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시집으로는 《분수령》(1937), 《낡은 집》(1938), 《오랑캐꽃》(1947) 등이 있다. 1949년 현대시인 전집의 제1집으로 〈이용악집〉이 나왔다. 월북 후, 남한에 《이용악 시전집》(1988), 《북쪽은 고향》〉(1989),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1989) 등이 출간되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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