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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바다 1 / 정지용

by 혜강(惠江) 2020. 9. 2.

 

 

 

바다 1

 

 

- 정지용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아서 몰아 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
제비 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

 

 

- 출전 <정지용 시집>(1935) 수록

 

 

◎시어 풀이

 

*뇌성(雷聲) : 천둥 치는 소리.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생명력 넘치는 아침 바다의 모습을 경이적인 자세로 바라보며 청각적·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바다의 심상을 감각적인 심상으로 그려내는 이 시는 다양한 심상을 통해 바다의 역동성을 형상화함으로써 이미지즘 계열의 시 세계를 보여 준다. 2행씩 4연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1연에서 시적 화자는 파도가 몰려오는 바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아서 몰아 온다.’라는 것은 연달아 파도가 밀려갔다 밀려오는 모습을 마치 소리치는 것처럼 ‘오·오·오·오·오’를 이용하여 실감 나게 표현한 것이다. 이는 파도소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면서 한편으로는 파도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오·오·오·오·오’는 청각과 시각이 동시에 드러내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2~3연은 뇌성이 울고 난 후 포돗빛이 된 바다를 드러낸다. ‘머언 뇌성’은 포돗빛 바다가 되기 위해 겪어야 할 시련을 의미하며, 아침바다가 ‘포돗빛으로 부풀어졌다’라는 것은 건강하고 싱싱한 바다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4연은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 제비 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라고 하여, 생기 넘치는 바다의 모습을 청각적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다.

 

  다시 정리하면, ‘바다’는 간밤의 시련인 ‘뇌성’을 겪고 난 뒤, 생명력 있고 싱싱한 포돗빛으로 부풀어진다. 이를 통해 ‘바다’는 시련을 극복한 생명력 넘치는 공간이 된다.

 

  특히, 이 시는 시인의 섬세한 감각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정지용 시인의 시 세계에 비교적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시는 초기 시집인 《정지용시집》에 수록된 ‘바다’의 연작시 중의 하나로, 여기서 바다는 자연계의 단순한 바다라기보다 시인에 의하여 감각적 표현의 명징함과 발랄함을 드러내는 제재이다. 이런 언어 탐구를 통하여 시인은 우리 시와 언어를 지키려는 일제 강점기 시인의 '자기 지키기' 노력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볼 수도 있다. 또한, 정지용이 바다 시편에서 완성한 감각적 선명성은 후기의 정신적 회화성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작자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시인. 충북 옥천 출생. 아명(兒名)은 지룡(池龍).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프란시스코. 휘문고보 재학 시절 박팔양 등과 동인지 ≪요람≫을 발간.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교내 시위를 주동하다가 무기정학을 받기도 했다. 1919년에 창간된 월간종합지 ≪서광≫에 소설 <3인>을 발표.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재학시에 유학생 잡지인 ≪학조(學潮)≫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그해에 ≪신민≫, ≪어린이≫, ≪문예시대≫ 등에 <다알리아(Dahlia)>, <홍춘(紅椿)>, <산에서 온 새> 등의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에는 박용철, 김영랑, 이하윤 등과 함께 동인지 ≪시문학≫ 발간. 1933년에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김기림·이효석·이종명·김유영·유치진·조용만·이태준·이무영 등과 함께 9인회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정지용은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로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34세 때인 1935년 첫 시집 ≪정지용 시집≫을 출간. 1941년에는 두 번째 시집인 ≪백록담≫을, 1946년에 ≪지용시선≫을 발간했다. 산문집으로 ≪문학독본≫(1948)과 ≪산문(散文)≫(1949)이 전해진다. 그리고 이들 단행본에 실리지 않은 시와 산문들도 모아서 1988년 민음사에서 ≪정지용 전집≫이 시와 산문으로 나뉘어 2권으로 발간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김기림. 박영희 등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 이후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다가 사망하였다.

 

<정지용의 문학 세계>

 

  정지용은 1930년대에 이미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당시의 시단(詩壇)을 대표했던 시인이었다. 김기림과 같은 사람은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의 시는 크게 세 시기로 특징이 구분되어 나타난다. 첫 번째 시기는 1926년부터 1933년까지의 기간으로, 이 시기에 그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미지를 중시하면서도 향토적 정서를 형상화한 순수 서정시의 가능성을 개척하였다. 특히 그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다듬은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여 다른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을 받는 <향수>(1927)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두 번째 시기는 그가 ≪가톨릭청년≫의 편집 고문으로 활동했던 1933년부터 1935년까지이다. 이 시기에 그는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둔 여러 편의 종교적인 시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반>, <불사조>, <다른 하늘> 등이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세 번째 시기는 1936년 이후로, 이 시기에 그는 전통적인 미학에 바탕을 둔 자연시들을 발표하였다. <장수산>, <백록담> 등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자연을 정교한 언어로 표현하여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해서 산수시(山水詩)라고 불리기도 한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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