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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궁금한 일 - 박수근의 그림에서 / 장석남

by 혜강(惠江) 2020. 8. 22.

 

 

 

 

 

궁금한 일 - 박수근의 그림에서

 

 

 장석남

 

 

  인쇄한 박수근 화백 그림을 하나 사다가 걸어놓고는 물끄러미 그걸 치어다보면서 나는 그 그림의 제목을 여러 가지로 바꾸어보곤 하는데 원래 제목인 ‘강변’도 좋지만은 ‘할머니’라든가 ‘손주’라는 제목을 붙여보아도 가슴이 알알한* 것이 여간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러다가는 나도 모르게 한 가지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가 술을 드시러 저녁 무렵 외출할 때에는 마당에 널린 빨래를 걷어다 개어놓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 빨래를 개는 손이 참 커다랬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장엄하기까지 한 것이어서 성자(聖者)의 그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는 멋쟁이이긴 멋쟁이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또한 참으로 궁금한 것은 그 커다란 손등 위에서 같이 꼼지락거렸을 햇빛들이며는 그가 죽은 후에 그를 쫓아갔는가 아니면 이승에 아직 남아서 어느 그러한, 장엄한 손길 위에 다시 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가 마른 빨래를 개며 들었을지 모르는 뻐꾹새 소리 같은 것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궁금한 일들은 그러한 궁금한 일들입니다. 그가 가지고 갔을 가난이며 그리움 같은 것은 다 무엇이 되어 오는지…… 저녁이 되어 오는지…… 가을이 되어 오는지…… 궁금한 일들은 다 슬픈 일들입니다.

 

 

- 시집 《젖은 눈》(1998) 수록

 

 

►시어 풀이

 

*박수근(朴壽根, 1914~1965) : 한국의 대표적인 서양 화가. 평범한 서민 생활의 모습을 주제로 절제된 미학을 보여주었다. 소재를 극도로 단순화하고, 공간감을 무시하며 대상을 평면화한 화풍을 통해 절제의 미를 화폭에 옮겨 민족 정서를 표현했으며, 질박한 색채와 바탕의 화강암 같은 마티에르가 특징이다. 이중섭과 쌍벽을 이룬 작가지만 이중섭의 자유분방함에 반해 최대한 절제된 화면효과를 추구했다. 주요 작품은 <농악>과 <나무와 여인>. <행인>, <할아버지와 손자>, <소와 유동(遊童)> 등이 있다.

*알알한 : 약간 아린 느낌이 있는.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모티브로 하여 그의 삶에 대한 화자의 감상을 드러낸 것이다. 화자인 ‘나’는 박수근의 그림 <강변>에서 일상적이고 소박을 정서를 느끼고 있으며, 박수근 화백처럼 예술을 일상과 연결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면서 예술과 일상의 조화를 바라고 있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소재로 하여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정서를 표현하는 이 시는 차분하고 설명적인 어조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ㅂ니다’라는 서술체를 통해 독자에게 정서적 친근감을 유발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박수근의 작품 <강변>을 보고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할머니’와 ‘손주’의 관계로 이해하기도 하면서 ‘가슴이 알알한’ 감동을 받고 좋아한다. 그리고 이어서 술을 마시러 나가는 날 저녁이면 ‘마당에 널린 빨래를 걷어다 개어놓곤 했다.’라는 박수근의 일화(逸話)를 떠올리고, 후덕한 인품(人品)을 지녔던 그에게서 장엄한 ‘성자(聖者)’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박수근 화백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강변의 풍경보다는 강변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시의 후반부에서 화자는 ‘궁금한 일’에 시상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는 박수근 화백이 보여 준 ‘일상의 숭고함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이제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햇빛, 뻐꾹새 소리’ 같은 그의 예술의 원천이 이제 그가 죽음으로써 더 이상 현실 세계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인지 화자는 궁금한 것이다. 이는 곧 박수근 화백이 이루어 놓은 일상의 위대함과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을 자신 또한 하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고 있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그가 가지고 갔을 가난이며 그리움 같은 것’에서 보듯이 화자는 박수근 그림의 주된 정서가 ‘가난’과 ‘그리움’이었음을 환기하면서 예술과 일상을 연결하지 못하는 예술가로서의 한계에 슬퍼하고 있다.

 

 

▲작자 장석남(張錫南, 1965~ )

 

 

  시인. 인천 옹진(덕적도) 출생. 1987년 《경향일보》 신춘문예에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어 시단에 등장했다. 아름답고 섬세한 감성으로 마음의 풍경을 묘사하는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절제된 시어로 내면의 깊은 서정을 보여 주는 그의 시는 특히 이미지의 탁월한 구사를 보여 준다.

 

  시집으로 《새떼들에게로의 망명》(1991),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1995), 《젖은 눈》(1998),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2001),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2005), 《뺨에 서쪽을 빛내다》(2010),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2012)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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