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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현해탄 / 임화

by 혜강(惠江) 2020. 8. 21.

 

 

 

현해탄

 

 

- 임화

 

 

 

이 바다 물결은

예부터 높다. (1연)

그렇지만 우리 청년들은

두려움보다 용기가 앞섰다.
산불이

어린 사슴들을

거친 들로 내몰은 게다. (2연)

·

(중략)

·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간

폐허의 거칠고 큰 비석 위

새벽 별이 그대들의 이름을 비출 때,
현해탄의 물결은
우리들이 어려서
고기떼를 쫓던 실내(川)처럼
그대들의 일생을
아름다운 전설 가운데 속삭이리라. (20연)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바다 높은 물결 위에 있다. (21연)

 

  - 시집 《현해탄》(1938) 수록

 

 

►시어 풀이

 

*현해탄 : 우리나라와 일본 규슈(九州) 사이에 있는 해협

 

 

▲이해와 감상

 

 

  구한말, 한반도를 둘러싸고 세계열강들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던 그 당시, 우리 젊은 청년들은 일본을 오가며 발달한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를 썼다. 이 시는 일제 강압기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을 오가던 식민지 청년들의 용기 있는 태도와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임화의 두 번째 시집 《현해탄》에 수록된 작품으로, 이 시집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과 같이 바다를 소재로 한 시이다. 이 시에 나타난 ‘현해탄’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해협으로, 중앙에 쓰시마 섬〔對馬島〕이 있으며, 옛날부터 한·일 간의 해상 연락로로 이용되어 왔다. 이러한 현해탄의 위치적 특성 때문에 현해탄은 종종 일본의 문화 혹은 근대화의 물결이 들어오는 통로로 상징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지식인들 사이에 그러한 일본의 선진 문화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는 ‘현해탄 콤플렉스’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는 당시 지식인들에게 유행했던 ‘현해탄 콤플렉스’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 일본은 이상의 땅이자 선진 문화의 세계이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을 압박하며 조선인으로서는 극복해야 할 문화적 대상이기도 하다. 임화는 이 같은 현실 상황을 조선과 일본을 가르는 ‘현해탄’에 비유하여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화자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며 청춘을 바친 청년들의 고귀한 희생을 영탄법, 설의법 등의 표현법을 사용하여 격정적인 어조로 청년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위에 제시한 <현해탄>은 전체 21연으로 된 작품으로 1연과 2연, 중간을 생략하고 20연과 21연에 해당한다. 1연에서 화자는 ‘이 바다 물결은/ 예부터 높다’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이 바다’는 ‘현해탄’을 의미하며, ‘물결이 예부터 높다’는 것은 실제의 파도이자 일본과의 역사적 장벽이 높다는 뜻이다. 즉 현해탄의 높은 물결은 일본을 비롯한 서양의 문화가 밀려오며 조선을 잠식하는 위기의식을 나타낸 것이다.

 

  그렇지만 2연에서는 ‘우리 청년들은/ 두려움보다 용기가 앞섰다/ 산불이 어린 사슴을/ 거친 들로 내몰은 게다’라며, 우리나라 청년들이 신문물 수용을 위한 자각을 하게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산불’은 신문물에 대한 자각을, ‘어린 사슴들’은 우리의 청년들을, ‘거친 들’은 일본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 청년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신문물에 대한 자각에 용기 있게 나섰음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20연은 시상을 뛰어넘어 용기 있게 나선 청년들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역사에 기록될 정도가 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폐허의 거칠고 큰 비석 위에/ 새벽별이 그대들의 이름을 비출 때’는 청년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미개한 땅에 ‘새벽별’과 같은 문명의 빛이 비쳐올 때를 가리키며, 그때 문명의 통로였던 ‘현해탄의 물결’은 그대들의 이름을 ‘아름다운 전설 가운데 속삭이라라’라는 표현으로, 화자는 청년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예찬하고 있다.

 

  그러나 21연에서 ‘우리는 아직도/ 이 바다 높은 물결 위에 있다’라고, 1연과 유사한 시구를 반복하면서 화자가 인식하는 현실의 험난한 모습을 드러낸다. 즉 근대화로 나아가기 위해 고통스럽게 견뎌야 할 험난한 현실을 제시하여 긴감을 높이고 있다.

 

  이 시는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가서 신문명을 배워 오려는 청년들의 기상이 주된 내용으로 제시된 것으로, 착취적인 일본의 지배력에 물들지 않고 독립적으로 그를 극복하려는 조선 청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절망과 패배를 벗어나 역사적인 승리로 나가고자 하는 열정을 촉구하는 작품이다.

 

 

▲작자 임화(林和, 1908~1958)

 

 

  시인. 본명은 인식(仁植), 서울 출생. 1926년 《매일신보》에 시 〈무엇 찾니〉, 〈서정소시(抒情小詩)〉 등을 발표해 문단에 나왔다. 초기에는 사회적·예술적 전통을 부정하고 반이성·반예술을 내세우는 다다이즘에 열중하는 듯했으나, 1926년말 KAPF에 가입하면서 계급문학론으로 옮겨갔다 일제 강점기 및 8·15해방 직후에 활동한 사회주의 문예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대표작으로 <우리 오빠와 화로>, <현해탄>이 있다. 시집으로 《현해탄》, 《찬가》(1947) 외에 6·25전쟁 때 펴낸 《너 어디 있느냐》(1950)가 있고, 평론집으로 《문학의 논리》(1940)가 있다. 6·25전쟁 중에 북한에서 단행본 《조선문학》(1951)을 간행한 바 있다.

 

 

▲참고 <현해탄> -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작품 전문을 올립니다.

 

 

이 바다 물결은

예부터 높다.

그렇지만 우리 청년들은
두려움보다 용기가 앞섰다.

산불이
어린 사슴들을
거친 들로 내몰은 게다.

대마도를 지나면
한가닥 수평선 밖엔 티끌 한 점 안 보인다.
이곳에 태평양 바다 거센 물결과
남진(南進)해온 대륙의 북풍이 마주친다.

몬푸랑보다 더 높은 파도.
비와 바람과 안개와 구름과 번개와.
아세아(亞細亞)의 하늘엔 별빛마저 흐리고.
가끔 반도엔 붉은 신호등이 내어 걸린다.

아무러기로 청년들이
평안이나 행복을 구하여.
이 바다 험한 물결 위에 올랐겠는가?

첫번 항로에 담배를 배우고.
둘쨋번 항로에 연애를 배우고.
그 다음 항로에 돈맛을 익힌 것은.
하나도 우리 청년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늘
희망을 안고 건너가.
결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느티나무 아래 전설과.
그윽한 시골 냇가 자장가 속에.
장다리 오르듯 자라났다.

그러나 인제
낯선 물과 바람과 빗발에
흰 얼굴은 찌들고,
무거운 임무는
곧은 잔등을 농군처럼 굽혔다.


나는 이 바다 위
꽃잎처럼 흩어진
몇 사람의 가여운 이름을 안다.

어떤 사람은 건너간 채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돌아오자 죽어갔다.
어떤 사람은 영영 생사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아픈 패북(敗北)에 울었다.

- 그 중엔 희망과 결의와 자랑을 욕되게도 내어판 이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지금 기억코 싶지는 않다.

오로지
바다보다도 모진
대륙의 삭풍 가운데
한결같이 사내다웁던
모든 청년들의 명예와 더불어
이 바다를 노래하고 싶다.

비록 청춘의 즐거움과 희망을
모두 다 땅속 깊이 파묻는
비통한 매장의 날일지라도.
한번 현해탄은 청년들의 눈앞에.
검은 상장(喪章)을 내린 일은 없었다.

오늘도 또한 나젊은 청년들은
부지런한 아이들처럼
끊임없이 이 바다를 건너가고. 돌아오고.
내일도 또한
현해탄은 청년들의 해협이리라.

영원히 현해탄은 우리들의 해협이다.

삼등 선실 밑 깊은 속
찌든 침상에도 어머니들 눈물이 배었고.
흐린 불빛에도 아버지들 한숨이 어리었다.
어버이를 잃은 어린아이들의
아프고 쓰린 울음에
대체 어떤 죄가 있었는가?
나는 울음소리를 무찌른
외방 말을 역력히 기억하고 있다.

오오! 현해탄은. 현해탄은.
우리들의 운명과 더불어
영구히 잊을 수 없는 바다이다.

청년들아!
그대들은 조약돌보다 가볍게
현해(玄海)의 큰 물결을 걷어찼다.
그러나 관문해협 저쪽
이른 봄바람은
과연 반도의 북풍보다 따사로웠는가?
정다운 부산 부두 위
대륙의 물결은.
정녕 현해탄보다도 얕았는가?

오오! 어느 날
먼먼 앞의 어느 날,
우리들의 괴로운 역사와 더불어
그대들의 불행한 생애와 숨은 이름이
커다랗게 기록될 것을 나는 안다.

일팔구0년대(一八九0年代)의
일구이0년대(一九二0年代)의
일구삼0년대(一九三0年代)의
일구사0년대(一九四0年代)의
일구 XX년대(一九 XX年代)의

......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간
폐허의 거칠고 큰 비석 위
새벽별이 그대들의 이름을 비출 때,
현해탄의 물결은
우리들이 어려서
고기떼를 쫓던 실내(川)처럼
그대들의 일생을
아름다운 전설 가운데 속삭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바다 높은 물결 위에 있다.

 

- 시집 《현해탄》(1938)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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