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페러디 / 오규원
꽃의 페러디* - 오규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왜곡*될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내가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풀, 꽃, 시멘트, 길, 담배꽁초, 아스피린, 아달린이 아닌 금잔화, 작약, 포인세티아, 개밥 풀, 인동, 황국 등등의 보통 명사나 수 명사가 아닌 의미의 틀을 만들었다. 우리들은 모두 명명*하고 싶어 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리고 그는 그대로 의미의 틀이 완성되면 다시 다른 모습이 될 그 순간 그리고 기다림 그것이 되었다. - 시집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1981) 수록 ◎시어 풀이 *패러디(parody) : 특정 작품의 ..
2020. 7. 10.
추운 산 / 신대철
추운 산 - 신대철 춥다. 눈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걸어야 할까? 잡념과 머리카락이 희어지도록 걷고 밤의 끝에서 또 얼마를 걸어야 될까? 너무 넓은 밤, 사람들은 밤보다 더 넓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이름을 붙여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 이름으로 말하고 이름으로 듣는 사람들 이름을 두세 개씩 갖고 이름에 매여 사는 사람들 깊은 산(山)에 가고 싶다. 사람들은 산(山)을 다 어디에 두고 다닐까? 혹은 산(山)을 깎아 대체 무엇을 메웠을까? 생각을 돌리자, 눈발이 날린다. 눈꽃, 은방울꽃, 안개꽃, 메밀꽃, 배꽃, 찔레꽃, 박꽃 나는 하루를 하루종일 돌았어도 분침 하나 약자의 침묵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들어가자, 추위 속으로. 때까치, 바람새, 까투리, 오소리, 너구리, 도토리, 다람쥐, ..
2020.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