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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그 이튿날 / 오규원

by 혜강(惠江) 2020. 7. 9.

 

 

 

 

 

그 이튿날

 

 

- 오규원

 

 

 

바람이 불고 간 그 이튿날

뜰에 나간 나는

감나무의 그림자가 한 꺼풀 벗겨진 걸

발견했다.

돌아서는 순간

뜰이 약간 기울어진 걸

발견했다.

 

뜰 위에는

부러진 아침 어깨뼈의 일부.

부러진 하느님 어깨뼈의 일부.

 

대문을 열고 출근하는 나의 발에

골목에 찢어져 뒹굴던

산의 외투가 한 자락 걸렸다.

아침을 픽픽 웃는

엊저녁 광대뼈의 표정이 보였다.

 

 

- 시집 《분명한 사건》(1971)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바람이 분 다음 날의 풍경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시인의 상상력과 감수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바람이 불고 간 그 이튿날의 모습을 시각화하여 바람의 파괴적 행위와 그것을 바라보는 불안한 내면 의식을 예민한 감각과 깊은 통찰력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에서 그려 낸 풍경은 ‘바람이 불고 간 그 이튿날 뜰’의 모습이다. 많은 시에서 ‘바람’은 외적 시련을 의미한다. ‘바람’은 외부에서 불어와 내면을 흔드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 시에서도 ‘바람’은 화자인 ‘나’의 내면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존재로 무서움을 지닌 파괴자이자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존재로 그려진다.

 

  화자는 1연에서, ‘바람이 불고 간 이튿날 뜰’에 나가 감나무 그림자가 벗겨지고, 뜰이 약간 기울어진 비정상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이모든 것은 ‘바람’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화자는 시인다운 통찰력과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한 기발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2연에서 화자의 상상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해가 뜨는 아침이라는 긍정을 지닌 시간까지도 부러뜨리고, 절대적 이미지인 ‘하느님의 어깨뼈’조차 부러뜨린 모습을 발견한다. 이 역시 일상적인 표현을 거부한, 독특하고 기발한 표현이다. 이것은 모두 어젯밤 ‘바람’의 소행으로 된 것이지만, 이 모습은 혼탁한 시대의 기형적인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3연에서는 화자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파괴된 뜰을 벗어나 대문을 열고 출근하는 골목에서 ‘골목에 찢어져 뒹굴던 산의 외투가 한 자락’ 걸려 있는 것을 목도한다. 이것은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휩쓸린 나뭇잎이 만들어 내는 모양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아침을 픽픽 웃는/ 엊저녁 광대뼈의 표정이 보였다’고 한다. 이것은 긍정적 시간인 아침을 비웃듯, 바람이 휩쓸고 간 처참한 모습, 즉 나뭇잎이 뒹굴며 만드는 모양을 묘사한 것이지만, 여기서도 시인이 남다른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바람이 불고 간 다음날, 뜰에서 시인이 포착해 낸 풍경을 오규원 시인다운 특징으로 잘 표현한 것으로, 오규원 시인은 평범하고 관습적인 시각과 논리의 틀을 벗어나 예민한 관찰력과 상상력, 통찰력으로 대상이나 현실의 모습을 뒤집거나 변형하여 시인 나름의 시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작자 오규원(吳圭原, 1941~2007)

 

 

  시인. 경남 밀양 출생. 1968년 《현대문학》에 <우계의 시>, <몇 개의 현상>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주로 시의 언어와 구조를 탐구하거나 물질문명과 정치화되어 가는 현대 언어를 비판하는 시를 썼다.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1971), 《순례》(1973), 《이 땅에 씌여지는 서정시》(1981), 《마음의 감옥》(1991),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1999),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2005)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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