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의 페러디*
- 오규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왜곡*될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내가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풀, 꽃, 시멘트, 길, 담배꽁초, 아스피린,
아달린이 아닌
금잔화, 작약, 포인세티아, 개밥 풀, 인동,
황국 등등의
보통 명사나 수 명사가 아닌
의미의 틀을 만들었다.
우리들은 모두
명명*하고 싶어 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리고 그는
그대로 의미의 틀이 완성되면
다시 다른 모습이 될 그 순간
그리고 기다림 그것이 되었다.
- 시집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1981) 수록
*패러디(parody) :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 또는 그런 작품.
*왜곡(歪曲) :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함.
*명명(命名) : 사람, 사물, 사건 등의 대상에 이름을 지어 붙임.
이 시는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원작에 나타난 대상 인식 방법인 ‘명명(命名) 행위’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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