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 순례11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 시집 《순례》(1973)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살아 있는 존재는 늘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 그 흔들림이야말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몸짓임을 말하고 있다. 화자는 직접 드러나지 않고, 자연의 모습에 비유하여 삶을 성찰하고 있으며,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살아가듯 사람도 시련을 겪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드러낸다.
단정적인 어조를 통해 화자의 생각을 강조하는 이 시는 반복법과 도치법, 의인법을 통해 자연의 모습에서 인간사의 깨달음, 즉 시련과 고통에 직면하는 삶의 태도를 형상화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고 진술한다.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는 고통을 통해 성숙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며,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는 고독과 고통, 그 자체로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화자의 생각을 의인법을 사용하여 단정적인 어조로 강조하는 것이다.
2연에서 화자는 살아 있는 존재는 ‘바람은 오늘도 분다’라고 표현하여, 날마다 가해지는 고통, 시련, 감내해야 하는 대상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바람’은 시련, 고통을 의미하며, ‘수많은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는 ‘바람’이라는 외적 요소로 인한 삶은 고통에 직면하여 하루하루를 힘겹게 엮어간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들판’으로 상징되는 삶의 공간에는 언제나 슬픔, 고독, 고통이 닥치게 마련이어서 그것에 시달리고 있음을 유사한 통사구조의 반복으로 화자의 생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화자는 3연에 와서,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이라는 표현으로, 고통을 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할 것을 도치법으로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빈 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면서도 성숙의 공간이요, 깨달음의 공간인 것이다.
이 시를 통하여 화자는 '빈들'이라는 공간에서 바람에 의해 쓸리고 흔들리는 잎을 보며 인간의 삶도 이러한 고통 앞에 피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작자 오규원(吳圭原, 1941~2007)
시인. 경남 밀양 출생. 1968년 《현대문학》에 <우계의 시>, <몇 개의 현상>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주로 시의 언어와 구조를 탐구하거나 물질문명과 정치화되어 가는 현대 언어를 비판하는 시를 썼다.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1971), 《순례》(1973), 《이 땅에 씌여지는 서정시》(1981), 《가끔은 주목받는 생(生)이고 싶다》(1987), 《마음의 감옥》(1991), 《한 잎의 여자》(1998),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1999), 《사랑의 감옥》(2001),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2005)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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