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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북방(北方) / 안도현

by 혜강(惠江) 2020. 7. 8.

 

 

북방(北方)

 

 

- 안도현

 

 

 

   물 좋은 명태의 대가리며 몸통을 칼로 쫑쫑 다져 엄지손톱 크기로 나박나박* 썬 무와 매운 양념에 버무려* 먹는 찬이 있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명태선*이라 한다. 국어사전에는 물론 없다

   이 별스럽고 오래된 반찬은 눈발의 이동 경로를 따라 북방에서 남으로 내려왔을 것 같다. 큰 산에 눈 많이 내리거나 처마 끝에 고드름 짱짱해야* 내륙의 부엌에서는 도마질 소리가 들려 왔던 것이다

   이것을 나는 노인처럼 편애*하였다. 들창*에 눈발 치는 날 달착지근한* 무를 씹으면 입에서 눈 밟는 소리가 나서 좋았고, 덜 다져진 명태 뼈가 가끔 이에 끼여도 괜찮았다

   나도 얼굴을 본 적 없는 할아버지가 맛있게 자셨다는 이것을 담글 때면 어머니는 솜 치마 입은 북쪽 산간지방의 여자가 되었으리라. 그런 날은 오지항아리* 속에 먼바다를 귀히 모신다고 생각했으리라

   갓 담근 명태선을 놓고 아들과 함께 밥을 먹는 오늘 저녁, 눈발이 창가에 기웃거린다. 북방한계선 밑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은, 수만 마리 명태 떼가 몰려오고 있다

 

 

-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2008) 수록

 

 

◎시어 풀이

 

*쫑쫑 : ‘송송’의 방언. 연한 물건을 조금 잘게 빨리 써는 모양.

*나박나박 : 야채 따위를 납작납작 얇고 네모지게 써는 모양.(의태어)

*버무려 : 여러 가지를 한데 뒤섞어.

*명태선 : 북방식 명태무침

*짱짱하다 : 1.얼음장이나 굳은 물질 따위가 갑자기 갈라질 때 크게 소리가 나다. 2 꽤 세차고 옹골차게 울리는 소리가 나다.

*편애(偏愛) : 어느 한 사람이나 한쪽만을 치우치게 사랑함.

*들창 : ① 들어서 여는 창. ② 벽의 위쪽에 자그맣게 만든 창. 들창문.

*달착지근한 : 조금 달콤한 맛이 있는.

*오지항아리 : 오짓물(흙으로 만든 그릇에 발라 구우면 그릇에 윤이 나는 잿물)을 발라 만든 항아리.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어린 시절 북방에서 먹던 명태선과 관련된 경험을 떠올리며 과거의 추억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화자인 ‘나’는 아들과 명태선을 반찬으로 먹으며 명태선과 관련된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과거 명태선과 관련된 그리움과 명태선을 맛있게 드셨다는 할아버지와 명태선을 만드셨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 시는 산문적 진술을 통해 시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현재 시제를 사용하여 추억에 대한 그리움을 현장을 있게 부각시켜 화자의 경험과 관련된 그리움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먼저 화자는 명태선을 만드는 과정을 의태어를 사용하여 생동감 있게 표현한 뒤, 남방에서 먹는 명태선의 이동 경로에 대해 추측하고 있다. 화자는 특별하고 유서 깊은 음식이 눈발의 경로를 따라 명태가 북에서 남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명태선도 ‘북방에서 남으로’ 내려왔을 것이라 짐작하면서, 고드름이 짱짱 어는 추운 날에야 부엌에서 명태선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진술한다.

 

  그런데 화자는 몇 가지 음식만을 좋아하는 노인처럼 편애하듯 즐겨 먹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들창에 눈발 치는 날 달착지근한 무를 씹으면 입에서 눈 밟는 소리가 나서 좋았고, 덜 다져진 명태 뼈가 가끔 이에 끼여도 괜찮았’기 때문인데, 특히 무 씹는 소리를 ‘눈 밟는 소리’로 연결시켜 표현함으로써 신선함을 더해 준다.

 

  그래서 화자는 명태선을 먹을 때마다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명태선을 맛있게 드셨다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할아버지를 위해 명태선을 담그신 어머니를 회상하며, ‘이것을 담글 때면 어머니는 솜 치마 입은 북쪽 산간지방의 여자가 되었으리라’라고 추측한다. 여기에서 ‘솜 치마 입은’은 정갈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명태선을 준비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날은 오지항아리 속에 먼 바다를 귀히 모신다고 생각했으리라’에서 ‘먼 바다’는 ‘대륙’에 대응하면서 명태선의 근원과 연결되는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며, ‘귀히 모신다’는 표현으로 명태선에 대한 화자의 긍정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그리고 화자는 ‘갓 담근 명태선을 놓고 아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수만 마리의 명태 떼가 몰려오고 있다’라는 현대 시제를 사용하여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갓 담근’의 시구는 할아버지가 ‘맛있게 자셨다’와 연관되는 장면이며, 갓 담근 명태선을 놓고 ‘아들과 함께 밥을 먹는’ 행위를 통하여 세대 간의 유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이 시는 ‘명태선’이라는 음식을 함께 먹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리고, 그들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명태선’을 통해 바다와 내륙, 할아버지와 손자 세대가 하나로 통합되고 화합하고 있음을 그려내고 있다.

 

 

▲작자 안도현(安度眩, 1961~ )

 

 

   시인.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이 당선되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보편성을 지닌 쉬운 시어로 본원성을 환기하는 맑은 서정을 담아내고, 개인적 체험을 주조로 하면서도 사적 차원을 넘어서 민족과 사회의 현실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려내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시집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모닥불》(1989),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 《그리운 여우》(1998), 《바닷가 우체국》(1999),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2004), 《간절하게 참 철없이》(2008),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2015)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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