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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모닥불 / 안도현

by 혜강(惠江) 2020. 7. 6.

 

 

모닥불

 

 

- 안도현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어두운 청과시장 귀퉁이에서
지하도 공사장 입구에서
잡것들이 몸 푼 세상 쓰레기장에서
철야 농성한 여공들 가슴 속에서
첫차를 기다리는 면사무소 앞에서
가난한 양말에 구멍 난 아이 앞에서
비탈진 역사의 텃밭 가에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 있는 곳에서
모여 있는 곳에서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얼음장이 강물 위에 눕는 섣달에
낮도 밤도 아닌 푸른 새벽에
동트기 십 분 전에
쌀밥에 더운 국 말아 먹기 전에
압록강 건너기 전에
배부른 그들 잠들어 있는 시간에
쓸데없는 책들이 다 쌓인 다음에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언 땅바닥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훅훅 입김을 하늘에 불어 넣는
죽음도 그리하여 삶으로 돌이키는
삶을 희망으로 전진시키는
그날까지 끝까지 울음을 참아내는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한 그루 향나무 같다

 

 

- 시집 《모닥불》(1989) 수록

 

 

◎시어 풀이

*잡것 : 점잖지 못하고 잡스러운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여기서는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됨.
출정가 : 싸움터에 나가기 전에 부르는 노래.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 되는 ‘모닥불’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모닥불’은 스스로를 태우면서 어둠을 밝히는 존재이다. 스스로를 태우면서 어둠을 밝히는 존재인 '모닥불'은 고난과 시련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극복하고 살아나갈 힘과 희망을 준다. 그런 점에서 ‘모닥불’은 민중의 삶에 대한 위로와 희망적 삶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이 시는 ‘~에서’, ‘~에’, ‘~는’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각운을 형성하고 있으며, 동일한 시행을 반복하여 모닥불처럼 자신을 불태우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자는 내용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시의 앞부분(1~11행)에서, ‘모닥불’이 피어오르는 공간을 떠올린다. ‘어두운 청과 시장’, ‘지하도 공사장 입구’, ‘쓰레기장’, ‘철야 농성한 여공들 가슴 속’, ‘면사무소 앞 정거장’, ‘양말에 구멍 난 아이 앞’, ‘비탈진 역사의 텃밭 가’ 등 장소 대부분이 민중들의 힘겹고 음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장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약자들이다. ‘비탈진 역사의 텃밭가’는 궁핍한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변두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화자는 삶의 현장에서 힘겨운 현실을 이겨내며 착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따뜻함과 위로를 주는 존재로 ‘모닥불’을 그리고 있다.

 

  이어 12~20행에서 화자는, ‘모닥불’이 삶의 어떠한 순간에도 꺼지지 않고 피어오르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얼음장이 강물 위에 눕는 섣달’은 견디기 힘든 혹독한 시련의 시간을 의미하며, 반면에 ‘쌀밥에 더운 국 말아먹기 전’이나 ‘배부른 그들 잠들어 있는 시간’은 삶이 풍요롭고, 안정되어 안락에 빠져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장 독립군들 출정가 부르기 전’은 식민지 시대 불의와 억압에 항거하던 때를 의미하며, ‘압록강 건너기 전’은 궁핍한 삶을 견딜 수 없어 강을 건너야 하는 삶의 절박한 순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쓸데없는 책들이 다 쌓인 다음’은 힘겨운 삶 때문에 지식이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즉, ‘모닥불’은 고난과 시련의 순간과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순간, 풍요와 안일의 순간, 그 어는 순간을 막론하고 민중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해 왔음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 21~27행에서 화자는 ‘모닥불’의 넘치는 생명력을 드러낸다. 즉 ‘모닥불’은 고단한 현실을 극복하는 위로와 힘이 되고, 뜨거운 열정으로 삶을 소생시켜 희망에 이루는 날까지 인내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화자는 ‘모닥불’을 ‘한 그루 향나무 같다’라고 하여, ‘모닥불’을 제사를 지낼 때 죽은 이를 기리는 역할을 하는 ‘향나무’에 비유하여 숭고한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모닥불'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주고, 삶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며, 사람들에게 고된 삶 속에서도 살아갈 희망을 주는 존재이다. 따라서 이 시는 고단한 삶과 역사적 암흑기를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주는 존재로서의 '모닥불'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안도현 시인에게 있어 '불'은 그의 시 <모닥불>, <연탄 한 장>, <너에게 묻는다> 등의 작품에서 보듯이, '따뜻함, 밝음' 등의 긍정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과 연대 의식을 공유한다. 특히 '자신을 희생하면서 주변을 밝고 따뜻하게 해 준다'라는 '불'의 의미는 소외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초기 시에 속하는 <모닥불>은 희생적 사랑을 요구하는 전 단계로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통하여 시공을 초월하여 삶을 ‘희망’으로 전진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작자 안도현(安度眩, 1961~ )

 

 

  시인.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보편성을 지닌 쉬운 시어로 본원성을 환기하는 맑은 서정을 담아내며 개인적 체험을 주조로 하면서도 사적 차원을 넘어서 민족과 사회의 현실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려내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시집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모닥불》(1989), 《그리운 여우》(1998), 《바닷가 우체국》(1999),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2004)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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