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닥불
- 안도현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어두운 청과시장 귀퉁이에서
지하도 공사장 입구에서
잡것들이 몸 푼 세상 쓰레기장에서
철야 농성한 여공들 가슴 속에서
첫차를 기다리는 면사무소 앞에서
가난한 양말에 구멍 난 아이 앞에서
비탈진 역사의 텃밭 가에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 있는 곳에서
모여 있는 곳에서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얼음장이 강물 위에 눕는 섣달에
낮도 밤도 아닌 푸른 새벽에
동트기 십 분 전에
쌀밥에 더운 국 말아 먹기 전에
압록강 건너기 전에
배부른 그들 잠들어 있는 시간에
쓸데없는 책들이 다 쌓인 다음에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언 땅바닥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훅훅 입김을 하늘에 불어 넣는
죽음도 그리하여 삶으로 돌이키는
삶을 희망으로 전진시키는
그날까지 끝까지 울음을 참아내는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한 그루 향나무 같다
- 시집 《모닥불》(1989) 수록
*잡것 : 점잖지 못하고 잡스러운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여기서는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됨.
출정가 : 싸움터에 나가기 전에 부르는 노래.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방(北方) / 안도현 (0) | 2020.07.08 |
---|---|
석류(石榴) / 안도현 (0) | 2020.07.07 |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1) | 2020.07.05 |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0) | 2020.07.05 |
간격(間隔) / 안도현 (0) | 2020.07.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