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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간격(間隔) / 안도현

by 혜강(惠江) 2020. 7. 4.

 

 

 

 

간격(間隔)

 

 

- 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 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2004) 수록

 

 

◎시어 풀이

 

*간격 : 공간적으로 벌어진 사이.
*울울창창 : 큰 나무들이 아주 빽빽하고 푸르게 우거져 있는 모양.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불에 타 버린 나무를 보면서 나무와 나무가 숲을 이루는 것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적당한 간격이 있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있다.

 

 시에서 화자는 직접 드러나지 않고 숲의 나무들이 숲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지니고 있다가 불에 타버린 숲에 가 본 후 숲이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이 있음을 깨닫고, 인간관계도 맹목적인 집착이 아닌 적당한 ‘간격’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에서의 ‘간격’은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인 동시에, 지나친 밀착보다는 여유와 관조가 필요한 인간관계의 적당한 ‘간격’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무를 인격화하여 표현하고 있는 이 시는 자연물에서 얻은 깨달음을 인간관계로 확장하고, 숲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얻기 전과 후로 시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또한, 유사한 시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다.

 

 시의 구성을 보면, 1~7행까지의 전반부는 울창한 숲을 원경으로 바라보았을 때의 인식을 다루고 있다. 그때까지 시적 화자는 나무들이 빈틈없이 모여서 밀착함으로써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8~15행의 후반부에서는 공간의 이동에 따라 이러한 시적 화자의 인식에 결정적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즉, 불에 타 버린 숲속에서의 새로운 깨달음이다. 여기서 시적 화자는 불에 타 버린 숲의 한 가운데 들어와 보고 나서 숲을 이루는 것이 나무와 나무 사이의 적당한 거리에 있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나무’와 ‘숲’을 중심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즉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즉, ‘나무’는 개인으로, 나무가 모여 이룬 ‘숲’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 혹은 개인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간관계 안에서의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개인과 개인이 무조건 밀착되어 있을 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한 발짝 떨어진 위치에서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완성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시 <간격>은 마치 ‘간격’의 소중함에 대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 <결혼에 관하여>에 나오는 잠언(箴言)을 연상케 한다. “너희는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 두 언덕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이 말처럼 사람 사이의 ‘간격’은 바람이 통하고 햇빛도 들며 조화의 아름다움도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자칫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처가 깊어지면 필경 사달이 나고 만다. 적당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여유로운 삶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 아니겠는가?

 

 

▲작자 안도현(安度眩, 1961~ )

 

 

  시인.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보편성을 지닌 쉬운 시어로 본원성을 환기하는 맑은 서정을 담아내며 개인적 체험을 주조로 하면서도 사적 차원을 넘어서 민족과 사회의 현실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려내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시집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모닥불》(1989), 《바닷가 우체국》(1999),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2004)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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