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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by 혜강(惠江) 2020. 7. 5.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 시집 《그리운 여우》(1998)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에서 화자는 겨울 강가를 바라보는 이로, 화자는 겨울 강물의 모습을 통해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음과 함께 희생적인 사랑의 가치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자연물인 ‘강’과 ‘눈’에 인격을 부여하는 의인법을 사용하여, ‘강’과 ‘눈’의 관계를 통해 대상에 새로운 관계를 부여하여 시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우리 사회에도 강과 같은 배려가 필요하다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1~5행에서 화자는 ‘어린 눈발’이 ‘강물’에 떨어져 녹아버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이 시에서 '눈'은 아직 어려서 순수하고 철이 없는 연약한 존재를 상징하고, ‘눈’과 대응되는 '강'은 그런 여린 눈이 닿기만 해도 사라져 버리게 할 수 있는 강한 존재를 상징한다. 그러기에 화자는 ‘어린 눈발’이 강물에 떨어져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라’라고 생각한다. 이 표현 속에는 강자의 약자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6~9행에서 화자는 ‘강’이 ‘눈’을 위해 배려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즉, 눈이 강에 떨어져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강’은 ‘눈발이 물 위에 떨어지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다’라고 한다. 여기서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라는 표현은 강의 물결이 일어나는 모양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이지만, 뒤에 오는 ‘세찬 강물 소리’와 함께 사라져 없어지는 ‘눈’에 대한 ‘강’의 배려인 것이다.

 

  그런 ‘강’은 마지막 10~15행에서, ‘계속 철없이’ 내리는 ‘눈’을 위해 자신의 표면에 살얼음을 얼려 눈발을 위하고자 하는 상생의 정신을 보여 준다. 즉 ‘강’은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고 진술한다.

 

  이 시에서 ‘강’은 강한 자신의 힘을 남용하는 폭압적인 존재가 아니라, 눈발의 철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약자인 눈발을 위해 배려할 줄 아는 현명한 강자로 그려진다. 시인은 이러한 강의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에도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시로 표현한 것이다.

 

 

▲작자 안도현(安度眩, 1961~ )

 

 

  시인.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보편성을 지닌 쉬운 시어로 본원성을 환기하는 맑은 서정을 담아내며 개인적 체험을 주조로 하면서도 사적 차원을 넘어서 민족과 사회의 현실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려내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시집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모닥불》(1989), 《그리운 여우》(1998), 《바닷가 우체국》(1999),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2004)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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