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격(間隔)
- 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 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2004) 수록
◎시어 풀이
*간격 : 공간적으로 벌어진 사이.
*울울창창 : 큰 나무들이 아주 빽빽하고 푸르게 우거져 있는 모양.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불에 타 버린 나무를 보면서 나무와 나무가 숲을 이루는 것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적당한 간격이 있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있다.
시에서 화자는 직접 드러나지 않고 숲의 나무들이 숲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지니고 있다가 불에 타버린 숲에 가 본 후 숲이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이 있음을 깨닫고, 인간관계도 맹목적인 집착이 아닌 적당한 ‘간격’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에서의 ‘간격’은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인 동시에, 지나친 밀착보다는 여유와 관조가 필요한 인간관계의 적당한 ‘간격’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무를 인격화하여 표현하고 있는 이 시는 자연물에서 얻은 깨달음을 인간관계로 확장하고, 숲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얻기 전과 후로 시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또한, 유사한 시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다.
시 <간격>은 마치 ‘간격’의 소중함에 대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 <결혼에 관하여>에 나오는 잠언(箴言)을 연상케 한다. “너희는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 두 언덕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이 말처럼 사람 사이의 ‘간격’은 바람이 통하고 햇빛도 들며 조화의 아름다움도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자칫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처가 깊어지면 필경 사달이 나고 만다. 적당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여유로운 삶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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