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 수록
◎시어 풀이
*쭈빗쭈빗 : 몹시 송구스럽게 망설이며 자꾸 머뭇머뭇하는 모양.
*진눈깨비 : 비가 섞여 내리는 눈.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한 마디로 따뜻하다. 그리고 훈훈한 느낌을 준다. 이 시에서 화자인 ‘우리’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삶의 어려움에 부닥친 이웃들을 따뜻하게 포용하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이 시는 우리가 ‘눈발’이 된다는 가정하에 삶의 어려움으로 인해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을 주는 따뜻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소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진눈깨비’라는 부정적 시어와 ‘함박눈’이라는 긍정적 의미의 시어를 대조적으로 사용하여 의미를 구체화하고 있으며, ‘~라면’이라는 가정적 진술과 ‘~되자’라는 청유형 어미를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청유형 어미는 개인 차원의 노력과 실천보다는 공동체 차원에서의 노력과 실천을 강조하는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시적 화자는 1~3행에서 우리가 만약 눈발이 되어 날린다면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라고 한다. ‘진눈깨비’는 비가 섞여 내리는 눈으로, 사람들에게 귀찮고 무가치한 존재를 상징한다. ‘
'진눈깨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화자는 이어 4~7행에서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따뜻한 함박눈’이 되자고 한다. 여기서 ‘함박눈’은 앞의 ‘진눈깨비’와 대조되는 시어로 ‘따뜻한’이라는 시어가 말해주듯, 부정적인 현실 속에서도 타인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존재이다. 함박눈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린다는 것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내린다는 의미이다.
이어 8~12행에서 화자는 ‘우리가 눈발이라면’을 반복하면서 ‘잠 못 든 이의 창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고한다. 여기서 ‘잠 못 드는 이’는 힘든 세상살이로 인해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깊고 붉은 상처’ 역시 삶의 어려움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의 상처를 의미한다. 따라서 ‘편지’는 ‘잠 못 드는 이’의 위로가 되고 희망을 주는 존재이며, ‘새 살’은 치유를 상징하는 긍정적 존재로서, 이 두 시어는 ‘함박눈’과 동일한 이미지로 사용된 것이다.
결국, 이 시는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힘들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상태로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에게 힘과 위로,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눈발’로 가정하여 청유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화자의 다짐이며 의지인 동시에 독자에게 권유하는 중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작자 안도현(安度眩, 1961~ )
시인.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이 당선되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보편성을 지닌 쉬운 시어로 본원성을 환기하는 맑은 서정을 담아내고, 개인적 체험을 주조로 하면서도 사적 차원을 넘어서 민족과 사회의 현실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려내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시집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모닥불》(1989), 《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 《그리운 여우》(1998), 《바닷가 우체국》(1999),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2004), 《간절하게 참 철없이》(2008),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2015)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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