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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연탄 한 장 / 안도현

by 혜강(惠江) 2020. 7. 2.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산산히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2004) 수록

 

 

◎시어 풀이

 

 

*방구들 : 온돌(溫突). 구들장을 덮고 흙을 발라 방바닥을 덥게 하는 장치.

*으깨는 : 굳은 물건이나 덩이로 된 물건을 눌러 부스러뜨리는.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연탄’의 자기희생적인 모습을 통해 화자의 이기적인 삶의 모습을 반성하고, 연탄의 자기희생적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작품이다.

 

  연탄은 한때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한 땔감이었다. 게다가 다 타고 난 연탄재는 추운 겨울 빙판길에 뿌려져 사람들을 편히 다닐 수 있게 하는 등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연탄은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사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 헌신과 자기희생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 존재이다.

 

  ‘연탄’이라는 일상적 사물의 속성을 통해 삶의 자세에 대한 깨달음을 전하는 이 시는 ‘연탄’과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연탄’과 ‘나’의 대조적인 삶의 태도를 드러내고, 도치법을 통해 자기반성을 촉하고 있다. 또한, 청각적 심상과 촉각적인 심상을 사용하여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인 ‘나’는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자기희생적 삶이 진정한 삶의 모습임을 드러내고 있다.

 

  2연에서는 ‘연탄’의 속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면서 자신의 삶의 자세를 반성하고 있다. 화자는 겨울철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연탄 차가 ‘언덕길을 오르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우리 이웃을 따뜻하게 해 주기 위해서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기 때문이다. 또한, 화자는 제 몸을 태워 방을 뜨겁게 하고, ‘밥과 국물’을 따뜻하게 하는 '연탄'의 역할에서 '온몸으로 하는 사랑'을 발견한다. 하지만 자신은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연탄'과 같은 헌신적인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음을 반성한다.

 

  그래서 화자는 3연에서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이라며, 철저한 자기희생이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밝히고 나서, 4연에서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라며, 자신의 삶에 대한 삶을 반성하며, 이제는 그런 희생적인 사랑을 베푸는 존재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연탄’을 소재로 한 안도현 시인의 다른 시 <너에게 묻는다>는 '연탄' 혹은 '연탄재'라는 보잘것없는 대상 속에서 타인을 위한 희생의 가치를 찾아냄으로써 독자에게 참된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시와 유사하다. 또한 '연탄'의 가치를 '너에게 묻는다'라는 형태로 묶는다면 두 편의 시를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만큼 내용의 일치성을 보이고 있다.

 

 

▲작자 안도현(安度眩, 1961~ )

 

 

  시인.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보편성을 지닌 쉬운 시어로 본원성을 환기하는 맑은 서정을 담아내며 개인적 체험을 주조로 하면서도 사적 차원을 넘어서 민족과 사회의 현실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려내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시집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모닥불》(1989), 《바닷가 우체국》(1999)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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